공간에도 스타일을 찾는 시대다. 오죽하면 청담동에서는 아무리 멋진 바나 레스토랑이라도 ‘잘해야 1년 간다’ 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더 새롭고 더 세련된 공간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뜻일 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생활 디자인전 ‘The SHOWROOM(쇼룸)’은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의 멋들어진 가구와 그것들을 이용한 독특한 실내 연출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공간 마니아’들이라면 당연히 눈길이 쏠린다.
전시장은 모두 5개의 방으로 나뉘었다. 각각 ‘구성(Composition)’, ‘색과 빛(Color and Light)’, ‘다양성(Multiple)’, ‘즐거움(Pleasure)’, ‘최소한(Minimal)’ 등. 이들 제목을 각각 단 방의 가구와 인테리어는 5명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하나씩 맡아 꾸민 결과물이다.
가장 주목받는 방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 디자이너 로낭과 에르완 브흘렉 형제가 연출한 미니멀 컨셉트의 방이다. 조합 가능한 구조물의 통합과 해체를 통해 언제든 변환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가구와 공간을 보여 준다. 30대 중반인 두 사람은 현재 유럽 디자인계의 기린아로 촉망 받는 인물들이다.
방은 하얀색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벌집 모양의 공간 분할(파티션)덕에 극도로 단순화된 미래의 사무 공간 같기도 하고 심오하며 철학적인 주제를 지닌 설치 공간 같기도 하다. 그러나 벌집 모양 파티션은 알고보면 6개의 앞뒤가 뚫린 원통들을 연결해 1개의 모듈로 만든 것이다.
사용자가 이 모듈을 서너개씩 들쭉날쭉하게 쌓아가며 원하는 모양대로 가구를 만들고 변형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뚫린 원통에는 책이나 작은 소품들을 수납할 수도 있다.
‘알그 시리즈‘로 이름 붙여진 이 가구는 기능성과 편의성, 나아가 사용자의 개성까지 고려한 입체적인 작품으로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를 가구 디자인에 맨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판톤의 ‘색과 빛’ 주제 방도 흥미롭다. 팝 아트로 대변되는 1960년대 디자인 혁명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 판톤의 방에는 생생한 색과 기하학적인 형태를 자랑하는 의자와 조명등이 가득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빨강색의 ‘판톤 의자’. 한 덩어리의 플라스틱을 성형해서 만든 의자로 긴 치마자락을 끌고 앉은 여성을 연상시킨다.
또 ‘하트 콘 의자’는 하트 모양으로 형태를 잡은 금속 프레임 위에 빨강색 천을 덧대 만든 것으로 리듬감 있는 곡선과 선명한 색채의 대비 효과가 눈부시다.
이 작품과 관련, 판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따분한 베이지나 회색의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환상을 사용해 보다 즐거운 환경을 만들라고 제안하고 싶다”며 자신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필립 스탁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단 방의 주인공이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발랄한 디자인의 의자, 조명, 쥬서, 사무용품 등이 총망라됐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단순하고 명쾌한 디자인의 ‘토이 의자’나 정면에서 바라본 모양이 마치 닭이나 오리의 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프트 에그(soft egg)’로 이름 붙여진 의자 시리즈가 선보인다.
이 밖에 ‘구성’방은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적과 청의 의자’, 최소한의 디자인만 남겼으면서도 경쾌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지그재그 의자’로 유명한 독일계 게리트 토마스 리트벨트의 디자인 상품들이 선보인다. 또 ‘다양성’ 방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 제품디자이너로 비대칭적인 구조와 다양한 문양을 즐겨 사용한 에토레 소트사스의 작업들이 소개된다.
이번 생활 디자인전을 기획한 기문주씨는 “디자인 감각이란 결국은 생활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부딪히면서 키워지는 것”이라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의 디자인 상품들을 재발견하고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계속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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