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얽혀 각축을 벌였다. 약소국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특히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던 정나라는 진나라와 초나라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내내 고생을 했다. 정나라가 선택한 처세는 상황에 따라 강자에게 줄을 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밖으로는 나라의 위신이 깎이고, 안으로는 지지하는 외세가 갈리는 폐단이 속출했다.
그러던 기원전 571년 여름. 정의 임금 성공이 병들어 눕게 됐다. 성공은 초나라와 연합해 진나라와 전쟁까지 치룬 임금으로, 초나라와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진나라로 넘어갔다고 판단한 신하들은 초와 단교를 바라고 있었다.
또한 초의 여러 가지 요구는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이에 자사라는 신하가 임금에게 건의했다. ‘병을 핑계 삼아 초나라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진나라와 손을 잡는 게 어떠한지요.’
그런데 성공은 이렇게 거절하였다. ‘초나라 임금이 우리와 함께 싸우다 실명까지 하였는데 어찌 배신을 하겠소. 또한 그 은덕과 상호간의 맹약을 배신한다면 신의 없는 우리를 누가 좋게 보겠소. 내가 그런 허물을 면할 수 있게 해 주시오.’ 성공은 초나라가 주는 부담은 알지만 나라의 이미지를 생각해 혈맹을 쉽게 끊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성공이 세상을 떠나자 진나라 군대가 국경을 침범하였다. 비록 소규모의 무력시위지만 나름대로 계산을 한 행동이었다. 정나라의 입장을 감안한 진나라는 정의 체면을 생각해 초와 단교하더라도 진의 압력에 부득이 굴복한 것으로 모양새를 만들어 준 것이다. 동시에 진나라는 정나라 문제를 협의하자며 자신의 동맹국들을 부른다.
거역하지 못하고 참가한 나라에 노나라도 있었다. 노의 사신은 진나라 비위를 맞추느라 나름대로 계책을 진언하였다. ‘정나라 국경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압박합시다.’ 진나라는 묘안이라며 칭찬하다가 갑자기 엉뚱하게 말을 돌렸다.
제나라가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며 공격할 생각이라고. 게다가 만약 전쟁이 나면 노나라가 거들어야 한다고 협박까지 했다. 노의 사신은 날벼락 같은 소리를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제나라가 말을 들어 전쟁은 안 났지만. 이래서 ‘좌전’에 ‘대국난측(大國難測ㆍ큰 나라의 속셈은 헤아리기 어렵다)’이란 말이 있나 보다.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6자 회담 소식을 들으면 춘추시대와 지금이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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