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에는 남송 시대의 충신 악비(岳飛)의 묘가 있다. 묘 앞에는 악비를 모함해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한 간신 진회(秦檜)가 무릎 꿇고 앉아 관람객들의 침 세례를 받고 있다. 후대 사람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 간신을 이렇게나마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1858∼1926)은 어떨까. 판교신도시 개발지구에 위치한 이완용의 생가 터 보존 여부를 놓고 경기 성남시와 대한주택공사가 고민에 빠져있다. 경기 성남시는 4일 “분당구 백현동 226의1에 있는 이완용 생가 터를 보존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이완용 생가는 6ㆍ25 때 불타 소실됐으며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진 기와집도 이달초 철거됐다. 이 생가 터는 주공 사업시행구역 내 공동주택용지로 지정돼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매국노의 후손들이 땅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민족의 죄인에 대한 심판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알리기 위해 생가 터 보존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생가 터를 보존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소형 표석을 설치하는 방법 등 여러 방안을 검토중이다.
사업시행자인 주공 측도 “아파트 단지에 공원 부지가 있기 때문에 생가 터 표식 설치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입주민들이 이완용 생가 터에 거주하기를 껄끄러워할 수도 있어 충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제 잔재를 척결하는 마당에 이완용 생가 터를 보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이완용은 1858년 6월 7일 경기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서 태어났다. 을사늑약을 주도하고 3ㆍ1운동에 경고문을 발표하는 등 친일에 앞장서다 1926년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숨진 뒤 전북 익산에 묻혔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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