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역구도의 해체가 정치생애의 목표이며 정권을 내놓고라도 성취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이미 “지역구도를 깨주면 대통령 권한도 양보할 수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다.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대통령 선거와 이어진 총선에서 대구 경북은 노태우의 민정당, 부산 경남은 김영삼의 민주당, 호남은 김대중의 평민당 그리고 충청은 김종필의 공화당이 각각 정치적 지지를 독점하였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떻게 지역을 분리시킬 것인지 또는 어떤 지역과 연합할 것인지가 선거의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87년 대선의 4자 대결 필승론, 92년 대선의 4자 대결 필승론, 92년의 호남 포위론 그리고 97년의 지역연합론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본선보다 지역 지배 정당의 공천을 획득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에서도 정치적 지지가 지역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현상은 계속되었다.
여서야동이 그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충청, 호남의 55석 중 44석, 한나라당은 영남의 68석 중 60석을 차지했다. 정치적 지지가 지역적으로 집중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역 주민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선거제도 변경으론 불가능
하지만 소선거구제가 일정 부분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강화시킨 측면도 있다. 이는 지역 정당이 일정 지역에서의 독점적 지지를 바탕으로 전국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도 중앙 정치 무대에서 나름의 세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유사한 선거제도를 사용하는 캐나다의 경우 퀘벡당은 퀘벡 지역에만 후보를 내고 배정된 의석을 거의 독차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 대통령이 제기한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고려해 볼만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선거제도를 바꾸면 지역주의 정치는 극복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주의 정치구도 해소를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열린우리당 후보가 영남에서 당선되고,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된다고 지역주의 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 정치는 복합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등장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고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역사적 측면, 중기적으로는 개발독재 시대의 불균등 발전과 관련된 경제적 측면,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용 등이다.
또한 자신의 출신 지역에 대한 애착과 타지역에 대한 배타성에 기초한 지역주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선거제도의 변경과 같은 단기적 처방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역사적 측면에서도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인정, 정치적 타협을
이런 측면에서 지역주의 구도는 한국 정치에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호남과 영남에서 가장 많은 정치적 지지를 받는 정당이 동일한 대우를 상정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지역주의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지역주의에 가려져 있던 갈등구조가 그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지역적으로는 영남에 기반하고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세력과 진보적이면서 호남 지역에 기반한 세력이 경쟁하는 구도이다.
정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협상을 통해 타협에 이르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지역주의라는 정치적 현실을 인정하고 도출 가능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