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면 백이 다 다를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고, 한편으론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삶을 외면한 채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또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최근 역사학계에서 새롭게 떠오른 ‘기억의 역사학’을 접목, 1945년 광복에서 48년 정부수립까지 격동의 해방공간을 입체적으로 되살린 다큐멘터리가 선보인다.
KBS 1TV가 9~12일 밤 10시 방송하는 광복60주년 특별기획 4부작 ‘우리는 8ㆍ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연출 홍현진ㆍ이욱정)이다.
제작진은 1년에 걸쳐 국내는 물론, 일본 호주 러시아 미국 등지를 돌며 해방공간을 체험한 내외국인 150여명을 만나 그들의 기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욱정 PD는 “역사라는 큰 강물을 밑바닥에서부터 움직였던 셀 수 없이 많은 물방울들의 이야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편 ‘천지가 벌컥 뒤집어진거여’에서는 일제 순사부장, 일본군에 잡혀 조선에 끌려온 호주인, 일본군으로 오인돼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억류당한 징병피해자, 독립운동가 등 각기 다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기억하는 8ㆍ15 그 날의 의미를 짚어보고, 2편 ‘홀랑 맨몸에서 시작했제’는 광복 직후의 극심한 혼란을 이겨낸 ‘풀뿌리 영웅들’의 삶에 귀 기울인다.
3편 ‘용케 살아남았는기라’는 당시 민초들의 생활고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1946년 대구 소요사건 현장에서 투쟁의 선봉, 진압경찰 등으로 비극적으로 만나야 했던 이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4편 ‘뭣 땜에 그렇게 싸웠을고’는 극렬한 좌우대립에 떠밀려 피의 보복이 되풀이 됐던,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의 현장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린다.
칙칙한 흑백 자료화면과 인터뷰로 채워졌던 현대사 다큐멘터리의 틀에서 벗어나, 포스터 삽화 만화 구술자의 스케치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고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실험을 시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어 13, 14일 오후 8시에 방송되는 2부작 ‘일본은 8ㆍ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연출 윤한용)는 구술사 중심은 아니지만, 일본인의 ‘기억’에 초점을 맞춰 전편과 대비된다.
‘천황’과 ‘히로시마’를 키워드로 해 전후 일본이 국가적으로 진행시킨 기억의 은폐와 왜곡의 메커니즘을 추적하고, 현재의 우경화 흐름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를 분석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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