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개발 덕에 졸부가 됐다는 사람과 국회의원의 골프 회동장이다. 캐디가 “장관님 나이샷!”을 외친다. 이어 품바 타령이 나온다.“어얼씨구 씨구 들어가안다~”
7월 7일부터, 좌석 120석은 노소동락의 열기 덕에 빈 곳을 찾기 힘들다. ‘품바’는 동시대를 흡수해 세대간의 벽을 녹인다. 10대에서 중년까지, 세대의 벽을 허물고 객석을 균점하는 특이한 광경이 매일 벌어진다. 젊은 층은 비교적 조용하게 극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반해, 오히려 중년층은 소풍 전날 아이들처럼 잡담을 멈출 줄 모른다.
극의 초입, 배경은 겨울로 바뀌어 일제 식민 치하로 넘어간다. 거지와 고수가 21세기를 갖고 놀 순서다. 춥고 배고픈 거지의 타령이 갖는 힘은 세월이 바뀌었음에도 불구,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객석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답했다. 3대 박동과와 7대 김기창이 번갈아 출연하는 이번 무대는 15대까지 이어 온 ‘품바’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김태형은 1987년 이래 줄곧 참여해 온 산 역사.
일장기를 상징하는 붉은 원이 전면 중앙에 강렬하게 투사된 무대에서 배우는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과 하수인의 작태를 일인극으로 소화해 낸다. 일본 문화의 홍수에서 극의 시선은 단호하다. “일본놈한테는 협조하지 말아야 해.” ‘천사들의 집’의 우두머리(천장근)의 한 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답했다.
품바 타령만 나왔다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라 하며 박자에 맞춰 박수다. 무대와 객석은 즉물적으로 소통해 ‘제 3의 벽’을 허문다. 흥에 겨워 박수를 치던 객석을 향해 던지는 말.
“잘 했다. 아쉬운대로 잘 했다, 자슥들아. 나는 거지고 느그는 중산층인께 잘 따라혀 봐.” 오래 전 거지들의 입심이 여전히 큰 울림을 갖는 것은 최근의 한일 관계에서 보듯,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욕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1년 1대 품바 정규수가 전남 무안군에서 초연후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했던 당시와 현재의 정서는 분명 다르다. 이번 공연 중 막걸리 마시는 대목에서 캔 막걸리가 등장한다거나, 넉살좋게 현재 CF의 대사를 인용하는 대목 등은 그 같은 사정을 반영한 결과다.
공연 초입, 거지 놀음을 하며 객석을 갖고 놀던 각설이가 문제 하나를 던진다. “나는 왕초, 여러분들은 뭐?” 구경꾼 중 한 사람에게서 “골초”라는 우스개 답이 나오자 거지가 받아 넘기는데, “앗따 유식하기는. 여러분은 떼거지들”이라고. 과연, 각설이 타령을 목이 터져라 합창하는 객석는 일거에 거지떼로 변신하고 만다. 돈암동 공부방 큰나무서당 수학 교사 박성희(40)씨는 “아이들 국악 공부가 절로 됐다”며 수업을 끝내고 함께 온 학생 8명과 배우의 기념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품바 타령 소리에 38선이 넘어지면 그게 통일이여. 통일의 쌍무지개 뜨는 그 날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가세….” 곧 이어 추는 병신춤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귀가 멍하다. 10월 6일까지 상상아트홀.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4시 30분 7시 30분, 일 3시. (02)741-3934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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