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X파일’을 통해서 재벌의 부도덕성과 권력기관의 도청 행위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 측면 모두 이미 극복되었어야 할 반(反)가치적 행위이지만, 특별히 권력기관의 도청 문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근로자 감시’ 문제로 시야를 넓혀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수 차례 보도되었듯이, 오늘날 많은 사업장에서 전자적 수단ㆍ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는 근로자 감시는 노동 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업장 감시’란 근로자들의 생산 활동 및 직장 생활에 관한 정보를 컴퓨터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수집, 저장, 분석, 기록하는 행위를 말한다. 2003년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207개 사업장의 90%에서 근로자 감시가 행해지고 있고, 사업장별로 평균 2.3개의 감시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위 조사에 의하면, 백화점에서 직원의 절도 행위를 감시하기 위하여 탈의실과 화장실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고, 운전사의 현금 편취 행위를 감시하기 위하여 시내버스에 CCTV를 설치하며, 노조 사무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전자ID카드나 전자신분증으로 근로자들의 출퇴근, 회사 내 이동 및 업무 내용을 기록케 하고, 지구상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근로자들을 실시간 감시하고, 지문ㆍ홍체ㆍ정맥 등 생체인식시스템을 통해서 근로자의 이동 과정뿐만 아니라 건강 상태까지 체크한다. 또 이메일 감시, 원격관리프로그램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 추적, 전화 도청 등에 의한 감시는 근로자 본인이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도 사업장 감시에 활용되고 있다.
근로자에 대한 사업장 감시는 노동 규율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노동 행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용자의 경영적 행위로서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사용자들은 작업 공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생산성을 제고하고, 기업 정보 유출 차단, 기업 재산 보호(도난사고 방지), 직장 내 사고ㆍ산재 예방, 정보기술(IT) 설비의 업무 외 사적 이용 방지 등을 위하여 사업장 감시가 필요하다고 한다. 경영 혁신을 위하여 첨단 정보기술을 도입할 뿐이지 사업장 감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다량으로 수집된 근로자 개인정보는 유출되어 다른 용도로 쓰일 위험성이 있고, 사용자에 의해 근로자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또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근로자로 하여금 통제규범을 내면화하거나 그에 순응하게 한다. 나아가 움직임 하나하나에 대한 통제는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심리적인 고통을 유발함으로써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업장 감시는 근로자의 인권,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이러한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업장 감시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사업장 감시에 대하여 근로자의 인권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입법 조치가 행해졌으며,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근로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외에는 적절한 입법 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다.
앞으로 사업장 감시에 있어서 근로자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 조치가 있어야 하며, 그 입법에서는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한 사업장 감시의 사회적 기준과 정당성 요건을 설정하고, 개인정보 관리통제권을 보장하며, 개인적 동의 또는 집단적 합의를 전자적 사업장 감시 채택의 선결요건으로 하여야 한다. 그 전에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의한 대응도 요청된다 할 것이다.
김인재 상지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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