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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욕망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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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욕망 공화국

입력
200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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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나 지방 사람들 중엔 서울의 거리를 지켜보면서 ‘불쌍하다’거나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인해(人海)를 헤쳐 나가면서 개미들처럼 정신 없이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는 모습이 불쌍하다는 것이고, 얼굴 표정은 굳어 있고 눈엔 비장하다 못해 살벌한 기운마저 감도는 게 무섭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달리 보는 사람도 있다. 공병호경영연구소장 공병호씨는 남미에서 오랫동안 사업한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요즘 한국의 희망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서울 사람들은 눈빛이 살아 있다. 그 눈빛은 남미 사람들에게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 살기등등하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만큼 자신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기를 원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미래를 정말 밝게 본다.”

맞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은 ‘욕구’‘욕망’‘욕심’ 따위임에 틀림없다. 어느덧 공기처럼 돼 버린 광고는 이미 타오르고 있는 욕구 욕망 욕심의 불길에 계속 부채질을 해댄다.

양 웅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그 증거의 일부를 부동산 광고에서 찾았다. ‘욕심 낸 그 곳에 꿈에그린이 온다(한화건설)’, ‘욕심 내세요(대방건설)’, ‘욕심 내세요, 어울림이니까(금호건설)’, ‘서울이 욕심 내는 곳(대림산업)’, ‘욕심나는 투자처(이수건설)’, ‘욕심 낼수록(한화)’, ‘욕심 낼 만한 이유(현대리모델링)’, ‘욕심만큼(대우건설)’, ‘아름다운 삶의 욕심(고려개발)’.

하긴 세계의 ‘욕망’ 연구자들은 한국의 아파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으로 정의했지만 아파트는 인간을 보관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욕망이 타오르게끔 관리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아이의 친구가 구분된다는 건 상식이다. 아파트값이 수천만 원 뛸 것이라는 욕망을 품고 아파트 이름을 최신 브랜드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많다. 서울 어느 아파트 반상회는 통장을 비롯한 주민 몇 명이 거짓으로 집을 팔 것처럼 광고를 내면서 집값을 거의 2배로 올려놓는 묘기를 선보였는가 하면,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를 싼 가격에 거래되도록 주선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아파트 가구율(전국 47.3%, 서울 50.3%, 서울 강남구 75.8%)은 상호 무관하지 않다. 욕심 없이 미친 듯 일할 리 없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족은 욕망의 불행이며,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욕구’‘욕망’‘욕심’이 우리 자신을 지배하는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고 무한성장을 위해 무한질주하는 삶은 위태롭다.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물질에 대한 욕구만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의 존재 증명과 과시를 위한 ‘인정 욕구’도 아무리 선한 목적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과도할 경우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은 ‘욕망 공화국’이다. 욕망에 두 얼굴이 있듯 이는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다. 나쁜 건 이중잣대다. 보통사람들의 욕망은 ‘평등주의’라고 꾸짖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무한대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이중잣대 말이다. 한국엔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가 없다는 말은 한국 엘리트가 주로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걸 시사한다. 엘리트건 보통사람이건 이제 거국적 수준으로 욕망의 ‘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X 파일’ 사건이 주는 교훈 중의 하나도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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