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다스리는 황제, 천황(天皇). 인간을 일컬어 이보다 더한 극존칭을 쓸 수 있을까. 이름 그대로 절대 권력이자 현인신(顯人神)으로 군림하던 일본 천황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통치권 없는 상징적 존재로 내려앉았다.
헌법에도 천황은 ‘일본국과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돼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은 천황을 ‘아라히토카미(현인신)’로 추앙하고,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모리 요시로 전 총리)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MBC는 광복60주년을 맞아 천황을 키워드로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조망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5부작 ‘천황의 나라 일본’을 7일부터 3주에 걸쳐 방송한다.
1부 ‘텐노(天皇), 살아있는 신화’(7일 밤 11시30분)는 1990년 현 아키히토 천황의 즉위식에서 총리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것을 두고 일부 시민들이 정교분리에 위배된다며 낸 위헌소송의 전말, 88년 히로히토 천황이 쓰러졌을 때 일본 열도를 휩쓴 ‘자숙 열풍’, 네살배기 황손 아이코에게 ‘사마’(樣)라는 극존칭을 쓰며 열광하는 모습 등을 통해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조명한다.
8일에는 2차 대전 당시 특공대원들의 영웅담 뒤에 감춰진 인권말살의 실상을 파헤친 2부 ‘사쿠라로 지다’(밤 11시5분),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천황제 파시즘이 탄생한 과정을 다룬 3부 ‘신을 만든 사람들’(밤 12시)이 이어진다.
4부 ‘충성과 반역’(14일 밤 11시30분)은 ‘천황(제)비판=반역’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현실, 5부 ‘제국의 유산’(21일 밤 11시30분)은 교전권 회복을 골자로 한 개헌 움직임을 통해 군국주의 부활 가능성과 천황제의 미래를 짚어본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나 우경화 추세는 기존 다큐멘터리에서 적잖이 다뤄졌지만, 천황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만큼 기획과정에서 고민도 깊었고, 취재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김환균 책임PD는 “천황이냐 일왕이냐는 용어 선택부터 격론을 거쳤다”면서 “가급적 우리의 민족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조명하자는 취지에서 천황이라는 호칭을 선택했고 인터뷰도 100% 일본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2일 열린 1부 시사회에는 아사히신문 후지TV 등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이 여럿 참석해 “객관성이 부족하다” “‘살아있는 신화’라는 제목을 붙이고도 현 아키히토 천황보다 히로히토 천황에 무게를 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는 등 촌평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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