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뉴시네마의 거장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의 공동 작품 ‘피오릴레’(1993)와 ‘로렌조의 밤’(1982)이 19일 나란히 개봉한다.
타비아니 형제는 현실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이를 주관적이면서도 비유적인 언어로 과감히 풀어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감독들. 이들의 작품이 국내에 정식 개봉한 것은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그랑프리를 동시에 수상한 공동 작품 ‘빠드레 빠드로네’(1977년 작, 97년 국내 소개) 이후 처음이다.
‘피오릴레’와 ‘로렌조의 밤’은 만들어진 지 각각 12년, 23년이 지났지만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영화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매체라 생각하는 관객들에게는 늦었지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으로 다가올 만하다.
● '피오릴레'
‘피오릴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과 역사를 씨줄과 날줄 삼아 만들었다. 나폴레옹 군대의 금화상자를 운반하던 청년 장교 장과 빈농의 딸 엘리자베타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시작으로 200년에 걸쳐 베네데티 집안에 내려진 저주를 좇는다.
황금에 눈이 먼 오빠 때문에 연인이 처형당하거나 여동생이 사랑을 방해한 오빠에게 독버섯으로 보복하는 이야기 등 한 집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별개의 극적 구조를 갖는 동시에 서로 섞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면서도 화면 사이의 갈피 속에 자본주의의 기원과, 꽃을 피우지 못한 혁명의 열정을 심어 놓아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현재와 과거가 한 장면에서 만나는 유려한 미장센이 마치 르네상스 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 15세.
● '로렌조의 밤'
타비아니 형제의 유년시절 경험을 스크린으로 옮긴 ‘로렌조의 밤’은 어린이의 눈으로 한 마을의 비극을 다룬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조그만 마을 산 마르티노. 독일군은 철수하기 전 마을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안전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성당에 모은 뒤 몰살시키려 한다. 하지만 독일군을 믿을 수 없던 늙은 농부 갈바노는 몇몇 사람을 설득, 늦은 밤 몰래 미군을 찾아 피란 길에 오르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영화는 마을을 깡그리 날려버리는 폭발 소리가 마냥 즐겁기만 한 철부지 여섯 살 소녀 체칠리아를 화자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러나 특별히 주연과 조연을 가르지 않고, 전쟁의 공포와 배고픔에 치를 떨면서도 일상처럼 서로 사랑을 하면서 싸우는 마을 사람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다채롭게 묘사한다.
별개의 것으로 보이던 사람들 각자의 사연과 아름다운 시골 풍경은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밀밭에서 펼쳐지는 파시스트와 마을 사람들의 총격전은 두고두고 복기할 만한 명장면. 총탄에 쓰러져 가는 무고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소년 파시스트의 죽음도 관객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를 던진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우리에게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서는 작품. 8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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