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재주꾼 장진 감독에게는 올 여름이 남다르다. 대학로에서의 호응을 발판 삼아 1998년 ‘기막힌 사내’로 충무로 상륙 작전에 성공한 지 7년.
4편의 장편 영화를 통해 튼실히 뿌리 박은 입지를 한껏 뽐내듯 자신이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과 직접 메가폰을 잡은 ‘박수칠 때 떠나라’가 잇달아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는 그는 힘든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펼쳐 보기 직전의 학생처럼 마냥 떨리기만 하다. “따로 제작까지 하니, 정작 제 작품은 잘 못 만든다는 말들이 나올까 부담이 많이 되네요.”
4일과 11일 각각 개봉하는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는 연극으로 막을 올려 호평 받은 장 감독의 동명 희곡을 재구성해 만든 작품. 재치 있는 언어와 극적 구성으로 일상의 상식을 살짝 비틀어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특기가 유감 없이 발휘된다. 시사회를 통해 일반 관객 10만 명을 미리 만난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 영화 위기론을 단숨에 털어 낼 수작으로 호평 받으며 흥행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 ‘웰컴 투 동막골’은 참 잘 만들었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박수칠 때 떠나라’가 아쉬움이 좀 남네요. 20억원 안에서 제 마음대로 만들고 싶었는데, 차승원이라는 스타 배우가 붙고 규모가 커지면서 안정적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제 색깔을 많이 희석 시킨 듯 해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정통 수사물과 추리극, 미스터리극이 뒤섞인 ‘무규칙이종’ 영화. 기존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장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잘 녹아 들어가 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최연기 검사(차승원)와 유력한 용의자 김영훈(신하균) 간의 팽팽한 심리 싸움이 화려한 언어 유희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가다 결말을 맺을 때쯤이면 관객들의 무릎을 치게 하면서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대반전을 지니고 있다. 검찰의 수사를 TV가 생중계한다는 설정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이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형식도 독특하다.
“좀 거만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냥 장진이 만든 미스터리 수사 추리극이다 말할 수 있어요. 장르적인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입니다. ‘이런 것이 꼭 필요할까’ 남들이 고민할 만 한 장면에서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영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입니다. 형식의 자유로움이 아직까지는 제 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요.”
영화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특별한 목표가 없었다는 그는 “나의 영화사 필름 있수다를 통해, 과감한 제작 방식을 도입한 감독 위주의 신선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대중에 영합하지 않지만 새로운 재미를 던져주는 영화, 그러면서도 제작자나 투자자가 손해를 입지 않는 대중 영화가 그의 지향점이라는 지론이다.
영화 경력이 일천한 박광현 감독에게 80억원의 대작 ‘웰컴 투 동막골’을 선뜻 맡기고 힘을 실어준 것도 그 같은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박 감독님은 영화를 대하는 장인 정신이 만만치 않은 분이에요. 촬영 기간을 넘기고 예산을 초과해도 감독의 상상력을 믿기에 올인 하며 밀어 붙였습니다.”
장 감독의 차기작은 갱스터 영화 ‘거룩한 계보’. 아직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기존의 조폭 영화와는 다른, 느와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케일 큰 상업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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