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X파일 사건의 경위와 내용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을 위해선 특별법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법상 내용공개는 불법인 만큼 드높은 국민적 공개 여론을 어떤 방향이든 수렴하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당이 제안한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처리 등에 대한 특례법’은 테이프 내용을 검토해 공개 여부를 결정할 가칭 ‘진실위원회’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오영식 원내대변인은 “국민의 알 권리와 실정법이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판단을 진실위에 위임해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당은 특별법에 진실위 설치 근거와 성격, 위원 구성방식과 절차, 정보공개의 권한 등은 물론 내용의 폐기ㆍ보존 여부도 담는다는 방침이다.
여당의 이 제안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저질러진 불법도청에 보다 예민할 수 밖에 없는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은 물론 정ㆍ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 파워엘리트의 치부를 움켜쥔 검찰에 대한 견제 등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한 것이다. 한편으론 테이프 내용의 공개 여부를 검찰 등 이 아닌 민간기구에 위임함으로써 여당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는 테이프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털어놓았다.
한나라당이 민주당 등을 설득해 공동발의를 추진중인 특검법 공세에 대한 맞불놓기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정세균 원내대표도 이날 “특검은 준비하는 데만 1달 이상 걸릴 뿐더러 검찰의 도청테이프 압수와 같은 신속한 대응이 힘들다”며 “수사는 검찰이 하고 공개여부는 진실위가 하는 우리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 내에서 “특별법은 결국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전면 폐기하기 위한 수순밟기”라는 주장도 없지않아 주목된다.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정치권도 결정하지 못한 테이프 공개를 민간위원들이 결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사회 일각에서 메가톤급 파장 때문에 테이프를 덮고 싶은 여권이 민간기구에 이를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