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사건을 조사 중인 국가정보원이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 등 핵심 관련자의 진술거부로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불법 도청의 ‘몸통’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씨는 1994년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팀의 재조직을 공운영(58)씨에 지시, 4년간 공씨가 취합해온 도청내용을 보고 받아온 인물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1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미림팀 재조직 과정과 보고 라인 등에 대한 질문에 “전직 핵심인사 등이 진술을 거부해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아직 전모를 파악하지 못해 말하기가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미림팀의 활동은 안기부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특수 업무였기 때문에 핵심 당사자들이 진술을 거부할 경우 실체 파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핵심 인물은 오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오씨를 상대로 미림팀을 누구의 지시에 의해 재조직했는지, 도청 내용을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도청 내용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에 대해 조사중이다.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면서 버티는 것은 불법도청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7년)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사법처리의 부담이 없어 자신들의 치부를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99년 공씨로부터 반출된 도청테이프 200여개와 녹취록을 회수할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천용택씨도 당시 일들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씨는 회수된 도청 자료의 내용을 보고 받았는지, 공씨를 면책하는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했는지 등에 대해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 조사가 순조롭지 못한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공씨에 대한 조사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검찰은 “일단 공씨에 대한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에 대비해 도청자료 유출과 삼성에 대한 공갈미수 혐의 등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수사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혀 공씨를 상대로 도청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것임을 내비쳤다. 검찰은 공씨가 퇴직 후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숨겨놓은 자료가 더 있는지도 수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날도 274개의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한 분석작업에 주력했다. 검찰 관계자는 “보안문제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검사 2~3명)만 투입하고 있으며, 검찰총장에게 (도청내용 중) 필요한 것은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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