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페그(고정)환율’ 폐지를 선언하고 2.1% 평가절상을 단행한지 열흘이 지났지만, 위안화 환율은 여전히 ‘페그’된 모습이다. 환율수준이 종전보다 그저 2.1% 낮아진 것일 뿐, 움직이지 않기는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얘기다.
1일 중국 외환시장에서 위안화는 달러당 8.1046위안에서 거래돼 환율제도 개편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년째 달러당 8.28위안으로 사실상 고정되어 있던 위안화 환율은 지난달 21일 8.11위안으로 2.1% 전격 절상된 이후, 소폭의 등락을 거듭해오다 27일(8.1128위안)을 정점으로 사흘째 하락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하락(절상)폭은 여전히 미미하다. 21일 이후 현재까지 위안화의 절상률은 고작 0.07%. 중국 외환당국이 위안화가 하루에 오르내릴 수 있는 범위를 상하 0.3%로 설정했던 점을 감안할 때, 열흘간 위안화의 등락률은 하루 변동폭에도 못 미치고 있다. 중국과 같은 날 고정환율제를 포기했던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가 지난 주말까지 0.7% 절상된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중국 사회과학원 허 판 박사는 “환율제도 변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위안화는 여전히 페그제”라고 분석했다.
이는 페그제 폐지 선언에도 불구, 중국정부가 여전히 위안화 환율을 통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페그환율 대신 여러 나라 통화의 변동률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이 바스켓을 구성하는 통화가 몇 개인지, 반영 비율은 얼마인지는 철저히 비공개에 붙였다. 위안화 환율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외부에선 전혀 알 수 없고, 따라서 중국 외환당국은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환율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위안화 평가절상 조치에 환영의사를 일단 표명했던 미국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위안화’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다시 환율공세의 고삐를 죄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폐그제를 없애는 대신 비밀스러운 절차(복수통화바스켓)를 통해 매일매일 위안화 가치를 재조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불투명한 정책을 채택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출신의 저명 경제 컬럼니스트인 존 배리는 “바스켓운용을 통해 중국은 새로운 환율재량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회가 중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위안화 추가절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추가절상은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위안화 환율은 이미 시장역학을 반영하고 있으며 정부주도의 추가절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실제로 중국이 가까운 시일안에 추가절상을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사실상의 페그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의 통상압력과 추가절상요구는 더 거세질 수 밖에 없어, 미·중간 2차 환율전쟁이 한층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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