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거의 500만이나 되는 미국 시민이 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이다. 50명에 1명꼴로 여기에는 전국 흑인의 13%가 포함되며 어떤 주(州)에서는 그 비율이 2배까지 올라간다.
선거권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인, 강도와 같은 중죄를 범한 범죄자들이다. 일부는 수감 중이기도 하고 보호관찰이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민들은 중범죄자가 아닌데도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14개 주는 전과자의 선거권을 영구히 박탈하도록 법률로 정해 놓았다. 집행유예나 보호관찰 기간에도 선거권이 유효한 주는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형벌의 한 방편으로 죄수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 어쩌면 이치에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타당성까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범죄의 대가를 모두 치렀다면 추가적인 처벌을 내릴 도덕적, 법적 정당성은 어디에도 없다. 범죄 경력자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조셉 헤이든은 “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라며 “교도소에서 자유는 잃을지언정 시민권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 지도자를 뽑는 중대한 사안에 있어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다시 반사회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일과 다름없다.
선진국의 입법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선거 부정이나 공공 부패에 연루된 범죄자를 제외하고는 전과 유무에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선거권을 인정한다(*한국은 범죄자의 형이 확정된 날로부터 모든 형기를 마칠 때까지만 선거권을 박탈하고 미결수나 형기를 마친 전과자에 대해서는 선거권을 인정한다. 단 선거 관련 범죄자는 예외이다-역자). 게다가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형이 만료됐다면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 동안 정당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범죄에 관대한’ 이미지로 비쳐질까 두려워 범죄의 종류나 시기를 따지지 않고 모든 범죄자의 권리 확대에 소극적이었다. 사회학자 크리스 유진은 ‘범죄에 강경 대처하자는 주장’과 ‘시민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맞붙는 상황을 ‘문화적 충돌’로 묘사하며 여론은 ‘권리 확대’에 더 호의적이라고 지적한다.
유진의 연구에 따르면 접전 중인 선거에서 범죄자들의 투표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그는 지난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가 전과자들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더라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 모든 전과자가 선거권을 갖고 있다면 지금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일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은 남부 주들의 법에서 나왔다. 심지어 단순 범죄 경력자에게도 투표를 금지했던 이 법은 훗날 인두세를 부과하거나 남부의 흑인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문맹 시험을 치르게 하는 근거로도 이용됐다.
아직도 미국의 법은 140만 흑인을 비롯해 500만 시민의 선거권을 금지하고 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선거권마저 박탈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범죄자들에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손실이다.
딕 마이스터 미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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