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인 충남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 마을 앞 논. 녹색의 물결 속에 논 가운데 일부가 이빨 빠진 강냉이처럼 벼포기는 사라지고 시꺼먼 흙이 드러나 있다. 주변엔 잡풀이 무성하다. 바로 옆 다른 논에는 피를 비롯한 풀들이 벼보다 높이 솟아있다. 논두렁은 사람이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잡초로 뒤덮였다. 누가 보아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ㆍ공주 지역에는 이처럼 농사를 짓다 영농기술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한 논들이 여러 곳이다. 이들의 주인은 거의가 외지인들이다.
지난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이곳에 땅을 소유한 상당수의 도시인들이 현지 주민에게 빌려주었던 농지를 회수해 직접 영농에 나섰다. 토지보상금 때문이다.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가 고향인 이모(46ㆍ대전 서구 탄방동)씨도 그 중의 하나다. 3,000여평의 논을 갖고 있는 그는 동네 주민에게 소작을 주었던 논을 돌려 받아 주말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기로 하고 올 봄에 모내기를 했다. 이씨는 “땅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 영농손실액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농사일이 쉽지는 않았다. 매주 농사를 지으러 내려올 수 없는 노릇이어서 논은 하루가 다르게 황폐해 갔다. 30% 가량의 벼가 말라죽자 그는 최근 농사를 포기했다. “모심기 등 중요한 일은 영농회사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며 “제초제를 뿌려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 많아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전에 사는 임모(46)씨도 지난 봄부터 주말마다 고향인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 내려와 벼농사를 짓다가 기술부족을 자인하고 농사를 포기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 외에도 농지를 회수해 위탁영농을 맡기는 사례도 많다. 이곳에서 위탁영농업을 하고 있는 이교완(41)씨는“이전까지 위탁영농 규모가 300마지기(6만평) 가량이었는데 올 들어서는 배가 넘는 650마지기(13만평)에 달한다”며“외지인은 물론 주민들도 소작을 회수해 맡기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외지인들이 농사에 뛰어든 것은 영농보상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충남도 행정도시추진지원단에 따르면 토지보상법상 수용되는 농지의 경우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2년치의 농산물 소득을 보상한다’고 되어 있다. 행정도시 예정지인 연기ㆍ공주 지역의 경우 전체농지의 절반가량이 외지인 소유로 되어 있고, 땅 주인의 70%가 영농보상금을 받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고 현지 농민들은 말하고 있다.
외지인들의 농사포기나 농작물 관리소홀에 대해 현지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논을 빌려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이중의 손해를 보고 있다. 농지가 줄어 영농소득이 감소한데다 실제 영농보상금을 받아야 할 자신들은 보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제대로 가꾸지 않은 논은 병충해가 심해 이웃 주민의 논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마을주민 유모(73)씨는“지(자기)가 지(자기)땅에 농사를 짓겠다는데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으려면 제대로 해야제”라며 “올해 이 지역은 풍년을 기대하기는 글렀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연기ㆍ공주=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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