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 만들어진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테이프 274개가 쏟아져 나오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나는 도청의 최대 피해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는 도청 테이프에 대해선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일각에선 “이처럼 간 큰일은 정권 핵심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며 YS의 직접 지시설을 제기한다. 물론 YS 측근들은 손사래를 친다. 문민정부의 첫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31일 “YS는 취임직후 도청 등 정치사찰을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려 안기부가 위축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림팀 재건 및 도청자료 보고 라인에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원종 전 정무수석도 “YS는 중앙정보부의 정치사찰에 대해 강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도청사실을 알았다면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상당하다. 최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도청이 안기부의 결정과 관성으로만 이뤄졌을 리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항간의 의혹대로 차남 현철씨가 미림팀 재건의 배후였다면 YS가 최소한 이를 묵인ㆍ방조했으며 도청 내용까지 보고 받았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여권 실세들 사이에서도 도청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것도 유의할 대목이다. K의원의 한 측근은 “당시 통상적 전화 외에는 사무실 전화를 사용하지 않은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시 여권 고위 인사도 “중요한 전화는 공중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집권이후에도 철칙이었다”고 전했다. 자연 도청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다는 YS만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적어도 YS는 도청을 토대로 안기부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의 한 핵심인사는 “일단 정보자료로 만들어진 이상 그것이 도청에 의한 것인지, 협박에 의한 것인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 보고엔 현철씨가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당시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밤새 만들어진 도청 자료는 핵심 내용만 메모 형식으로 당시 오정소 1차장에게 보고되고 다시 추려져 윗 선에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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