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테이프 274개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이 법이 국민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행법상 도ㆍ감청 행위를 규제하는 유일한 법률인 통비법은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12월 제정됐다. 90년대 초 정부ㆍ여당의 통비법 제정 움직임에 야당측은 재야ㆍ학생 운동권에 대한 공안기관의 불법도청 행위를 합법화하려는 음모라며 강력 반발했으나, ‘초원복집’ 사건으로 도청 규제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자 유례없이 강력한 법으로 탄생했다.
통비법 16조 1, 2항은 ‘도ㆍ감청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는 물론, ‘취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 또는 누설한 자’까지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타인의 비밀문서 개봉행위(3년 이하 징역)나 검ㆍ경의 피의자 가혹행위(5년 이하 징역)에 비해서도 형량이 훨씬 높다.
특히 공개 목적에 따른 면책사유를 전혀 두지 않아 이번처럼 훨씬 더 큰 사회적 비리를 담은 사안이라도 언론은 물론, 수사를 맡은 검찰까지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의 박인회씨처럼 개인적 이익을 위해 ‘거래’를 시도한 사람과 전혀 차별을 두지 않은 것이다.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경우 공개된 사안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309조) 통비법은 이런 예외 규정을 두지 않은데다, 처벌 형량이 지나치게 높아 향후 재판과정에서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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