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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삼성이 진정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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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삼성이 진정 사는 길

입력
2005.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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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X파일’이 온 나라를 뒤집어놓았다. 가마솥 더위와 겹친 탓인지 모두가 ‘안기부 X파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지러워 하는 모습이다.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이 사건의 핵심은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 정보기관이 무차별적 불법 도청을 저질렀다는 사실, 도청의 결과물인 녹음테이프에 담긴 가공할 내용, 도청내용 보도와 관련한 국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문제의 충돌, 드러난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등이 큰 줄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큰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충격적이고도 파렴치한 사실들은 일반 국민은 물론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사건에 매몰시켜 버릴 지경이다.

불법 도청된 내용이 국민의 알 권리를 자극할 만큼 충격적이고 개연성이 높아 도청의 불법성이 슬며시 뒷전으로 밀리는가 하면, 도청 내용 보도에서도 언론사마다 입장과 이해관계에 묶여 편리한대로 취사선택해 취급하고 있다. 정당들도 사건 파장의 유ㆍ불리에 따라 서로 판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X파일 면피성 사과 논란

사건의 핵심들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불법 도청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으며 정부ㆍ재벌ㆍ언론의 추악한 유착관계는 추방되어야 한다. 과거의 불법행위라도 진실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고 처벌이 가능하다면 처벌해야 마땅하며, 그렇지 않다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옳다. 검찰, 국정원을 포함한 정부가 할 일이다.

문제는 삼성(중앙일보를 포함하여)이다. 어찌 보면 이 사건의 핵심 중의 핵심은 삼성이다. 파장이 엄청난 것은 중심에 삼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정한 사과는 없이 토만 잔뜩 달린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을 리 없다. 각성의 자세는 보이지 않고 여론의 역풍을 일시 피하기 위해 전략만 비친다. 오히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언론 보도의 위법성 여부에 강력 대응할 방침을 시사했다. 방송 인터뷰에도 간부들은 보이지 않고 차장이 나와 앵무새 같은 코멘트를 되뇌는 것 역시 진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에 빠질 요인은 많다.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수출의 22%, 주식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하는 삼성은 한국경제의 견인차요, 기둥이자 대들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위상은 한국민의 자존심이다. 이런 삼성이 왜 지난 날의 관행적 과오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항변한다면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국가경제에 대한 막중한 기여도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삼성의 모든 것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 국민정서다.

성장과정에서의 무자비한 약탈자의 논리, 왜곡된 지배구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노사문화, 편법 상속, 인재 독점, 오너를 중심으로 철옹성처럼 구축된 전근대적 경영시스템 등은 빛나는 삼성의 장점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죄(原罪)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삼성을 극적으로 상징하는 조직이 바로 법무팀이다. 삼성은 100여명의 유능하고도 저명한 변호사로 이뤄진 막강한 법무팀을 갖추고 있다. 원활한 기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조직이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사회적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삼성을 보호하고 대응하기 위해 작동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눈엔 황제를 위한 검투사로 보일 뿐이다.

-성찰과 거듭남의 기회로

위대한 업적과 기여에도 불구하고 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고 적대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냉정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거론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룹사장단회의의 난상토론을 거쳐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이들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경영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삼성이 아닌가.

지금 삼성은 중대 기로에 서있다.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바로 이런 상황이 삼성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왕국의 꿈’을 과감히 버리고 어떤 면에서도 부끄러움 없는 기업으로 탈바꿈하지 않고선 국민의 마음을 움켜쥘 수 없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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