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세미나차 북한 금강산에 갔다. 이로써 나는 금강산을 다녀온 100만 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어떤 목적으로 가든지 우리는 각자 북한에 대한 이미지와 호기심 충족의 기대를 갖고 북한 땅을 밟는다.
역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면서 북한 병사와 세관원의 구리빛 얼굴과 제복이 주는 북한의 이미지, 통신기기 사용 통제와 언행 조심 당부 등은 우리가 남한과 다른 사회에 왔다는 확실한 느낌과 긴장을 주기에 충분했다.
-찡한 민족감정의 이면엔…
그러나 남북을 잇는 경의선 철도, 남북이산가족 상봉관, 정몽헌 추모비 등 남북 화해의 역사적 상징물들이 우리의 긴장을 잠시 풀어주기도 했다. 또한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하고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곡예에 갈채를 보내며 가슴 찡한 민족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민족감정은 금강산 등산로와 호텔 앞 포장마차에서 만난 북한 여성 접대원들로부터도 느꼈다.
그들은 우리가 북한 땅에서 접촉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북한 주민이었다. 그런데 그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만 빼 놓고 남북간의 확연한 다름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접대원은 의식주, 교육, 의료 문제를 국가가 다 해결해주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동산, 사교육 등의 문제로 상대적 빈곤과 불행을 느끼는 남한 주민과 그들을 비교할 수 있을까.
금강산 곳곳에 바위와 교시비에 새겨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치적에 감동하는 북한 주민과 이를 자연훼손 내지 우상숭배로 바라보는 남한 관광객의 사고의 차이는 또한 어떤가. 이념과 제도뿐 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남북이 얼마나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그 차이는 뚜렷했다.
그리고 그 다름과 차이는 남북이 오랫동안 단절과 대립 속에 쌓아 온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단의 가장 큰 장벽은 휴전선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간 사고의 차이일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남북간 불신과 대결 구조 속에서 왜곡되고 편협해진 것이다.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왜곡과 편견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남한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은 북한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서로를 왜곡하며 편협한 시각을 키워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런 시각은 상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편협한 시각으로서 반통일적인 결과를 이끈다. 불행하게도 그 동안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이런 시각으로 각각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며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지배를 위해 이념, 제도, 폭력을 동반하여 한민족을 억압하기도 했다. 남북은 각자의 체제 수호를 위해 내부의 반체제 사상을 억압하고 폭력을 증진시켜왔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판이 바로 북핵 문제이다.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날, 버스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한에 전력 공급을 약속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대화의 분위기는 최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을 이끌어 냈다. 남북간 혹은 북미간 긴장완화를 위해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길은 의사 소통이고 교류뿐이다.
-편협함ㆍ배타성 버려야
남북 대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 및 이산가족상봉, 체육문화 교류, 그리고 대북경제지원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남북은 자기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만이 이성적이고 민주적이며 체제 우월적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전쟁이 통일 전쟁이고 미국을 원수로 보는 타자의 중심에 서서도 안될 일이다. 통일을 위해서 남북은 초국가적이고 한민족의 자세로 서로를 대하고, 주변강대국에 대해서도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 금강산 관광에서 스스로 얻은 교훈이다.
현택수 고려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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