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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故 이구씨의 호칭은 황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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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故 이구씨의 호칭은 황태손

입력
2005.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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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구(李玖)씨의 별세를 삼가 애도하며 작금 일고 있는 그의 공식호칭에 관해 몇마디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1897년 조선왕국이 대한제국으로 격상되면서 모든 규범, 제도, 의전 등을 ‘제국’에 걸맞게 손질하고 바꾸었다. 몇 가지 두드러진 보기를 들면 지난 날 국왕의 일인칭을 ‘여(予)’ 또는 ‘과인(寡人)’이라 하던 것이 황제의 일인칭인 ‘짐(朕)’이 되고 경칭도 ‘전하(殿下)’에서 ‘폐하(陛下)’로 격상됐다. 따라서 왕권의 계승자인 왕세자는 황태자로, 그 밖의 왕자는 ‘대군(大君)’, ‘군(君)’에서 ‘친왕(親王)’으로 불리게 됐다.

대한제국 의전규범의 모델은 명제국이다. 명제국의 황위 계승제도는 이른바 ‘적장제’로 정실 소생의 적자를 우선하고 다음으로 희빈 소생의 서자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황제의 아들 중 정실 소생의 맏이가 황위 계승자인 황태자가 되고 그 밖의 여러 왕자는 친왕이라는 왕호를 받는다. 친왕의 맏아들은 ‘왕세자’, 장손은 ‘왕세손’이다. 조선국왕의 후계자를 세자라고 일컬은 것은 조선국왕의 위계를 친왕과 동격으로 간주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왕조 국왕의 후계자가 왕세자, 왕세자의 후계자가 왕세손이다. 대한제국 때 태어난 이은(李垠)은 제국의 법도를 따라 이미 대군, 군이 아니고 친왕이 되고 그 위에 영(英)이라는 이름을 붙여 영친왕으로 불린 것이다.

이은은 유희1년(1907) 8월7일 황태자로 승격되면서 영친왕의 왕호가 폐지됐다. 이후 이은은 사실상 황태자가 되지만 법적 절차인 책봉을 받은 것은 8월27일 순종의 즉위식이 끝난 다음인 9월7일이다. 이 날 순종은 황태자를 책봉한 조서를 온 나라에 선포했다.

마지막 황태자가 된 이은의 아들 이구씨의 호칭은 당연히 황태손이다. 물론 이미 대한제국의 실체가 없어지고 법적 절차인 책봉도 없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황태손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 상징적으로 볼 때 그는 황태자 이은의 아들이므로 황태손이라 할 수 있다. 더더욱 이구는 부군인 이은과 함께 조선왕조의 마지막 잔영이다.

그런데 장례위원회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황세손으로 호칭한다. 황(皇)과 세(世)는 제국과 왕국의 위계질서 상 차등이 있는 개념으로 맞지 않는 말이고 역사적으로 용례가 없는 신조어이다. 마땅히 황태손으로 호칭해야 한다.

대한제국의 형식적 자긍심은 대단하다. 고인의 공적 칭호가 잘못된 것은 역사를 본의 아니게 모독하는 것이다.

박태근 명지대 LG연암문고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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