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황인숙 지음 샘터 발행 1만5,000원
사진작가 김기찬씨와 황인숙 시인이 10여년 저쪽 서울의 골목 풍경과 삶을 사진과 글로 옮긴 책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을 냈다. 더러는 벌써 사라졌거나 미구에 사라질 풍경과, 그것이 여전히 소중하고 또 지긋지긋한 풍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다.
돌아보는 몸짓이 아름다운 것은, 관성의 힘에 떠밀리는, 하릴없이 떠밀려갈 것만 같은, 몸과 정신의 위태로운 무게중심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몸짓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운명적 지향성에 기댄 ‘인식’의 미학은 자칫 감상(感傷)에 유혹당하기 쉽다. 사진이력 35년을 흑백으로 일관해 온 그(김기찬)가 컬러를 선택하며 “모노톤이 가지는 감상을 억지”하고자 한 것도, ‘산4번지’로 끝나는 본적을 받아 나서 지금껏 골목동네를 벗어나 산 적 없는 시인이 ‘직접 체감’의 사진들과 조화하고자 애써 나직하고 담담하게 글을 쓴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책은 다섯 토막-꽃과 동물, 사람들, 지붕과 기와, 담장과 벽, 그늘과 적막-으로 나뉘고, 토막마다 한 컷 한 컷 시선을 붙드는 30장의 사진과 한 줄 한 줄 마음을 당기는 산문이 시(詩)와 어우러져 있다.
- 처마는 실생활에서 지붕의 가장 낭만적인 부위다. 우리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때, 처마 끝에서 굵어진 빗방울들이 주룩주룩 치는 수렴(垂廉) 너머의 세상은 가볍게, 깨끗이 부서지고 맺히며 아롱거리는 커다란 빗방울 같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처마 밑에서….(128쪽)
- 축대 계단 담장 벽의 공통점은 쌓아 올린다는 것이다. …그 행위에는 사람을 숙연하게 하는 데가 있다. 실재하는 육신의 삶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축대 계단 담장 벽들은 악착스레 보여준다. 허물어진 담벼락은 그 악착같이 견고한 물신이 애잔하게도 쇠한 표식이다.(169쪽)
- 누구 시엔가 ‘연탄가스같이 깔리는 비애’라는 구절이 있었던 것 같다. 절절한 표현이다.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내일에 대한 아무 희망 없이, 저와 같이 삶이 질척거리는 어두운 골목에 들어설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가 가슴속에 연탄가스처럼 깔릴 것이다.(210쪽)
시인은 그 풍경들을 사랑하지만, 끝내 미화하지 않는다. “가난은 삶의 얼룩인가 무늬인가? 옛날 동네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가난한 동네에는 시정(詩情)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문득 이용악의 시 ‘강가’의 한 구절이 눈물겨웁다”고 적었다. 3년 옥살이를 마친 아들의 마중을 나서는 늙은 아비의 노래인 시 ‘강가’는 이런 구절로 끝난다. “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쵠지/ 끄슬은 돌 두어 개 시름겨웁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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