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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산수간에 집을 짓고

입력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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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 지음ㆍ안대회 엮어 옮김돌베개 발행ㆍ2만원

‘키 큰 오동나무와 고풍스러운 바위 가운데 궤안 하나, 침상 하나를 놓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의 풍치를 상상하게 하여 참으로 정신과 뼛속이 다 같이 상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이전 개인 저술로는 가장 방대한 지식을 담은 백과전서다. 113권 52책 속에 관직에 나가지 않은 선비가 향촌에서 살아갈 방도, 즉 농사짓기부터 원예, 건축, 요리, 염색, 각종 기구 제작, 독서법, 건강법, 심지어 재테크 요령까지 담고 있다.

지금 활용해도 좋을 생활법도 있겠지만 책의 내용은 전통시대 삶의 모습을 매우 속속들이 알려주는 귀한 자료가 된다. ‘임원경제지’ 중 집 터를 고르고, 집과 주변을 짓고 꾸미는 요령을 밝힌 ‘이운지(怡雲志)’ ‘상택지(相宅志)’ ‘섬용지(贍用志)’도 마찬가지다.

십 수 년 전에 이 내용을 우리 말로 옮겨 잡지에 연재한 적이 있는 안대회 명지대 교수가 그 내용을 새로 고치고 해제까지 붙여 ‘산수간에 집을 짓고’를 냈다. 안 교수는 “우리가 보유한 옛 문헌 가운데 건축과 조경에 관한 내용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풍부하게,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설명해놓은 저술은 유일하다”고 밝혔다.

‘이운지’ ‘상택지’ ‘섬용지’는 서로 겹치는 내용이 거의 없이 상호 보완하여 집과 집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와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운지’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별장이나 전원주택, ‘상택지’는 주거지 선택의 다양한 조건과 집터를 조성하는 문제, ‘섬용지’는 집을 짓는 구체적인 기술과 건축자재를 나누어 설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풍석의 집짓기가 서민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 문화에 젖은 사대부였고, 그래서 주거공간 역시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이 생각한 주거문화이다. 그는 장서, 독서, 손님 접대용 건물이나 주변의 계산승지(溪山勝地)를 조망하기 위한 연못과 누정 같은 풍경 공간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창문을 비롯해 의자, 담요 등 실내와 실외 소품의 고급스런 취향까지, 드러내 보이려고 했던 것은 양반 가옥의 실상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운지’ 등은 전통시대 최고 수준의 한국적인 미학을 담은 집짓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식이나,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뽐내는 일본식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환경과 어우러지는 자연미를 한껏 살린 집짓기를 소개했다는 뜻이다. ‘집터를 찾고 전답을 구할 적에 샘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땅을 얻었다면 그 나머지 것들은 전혀 물을 필요가 없다’며 중국에서 연유한 풍수지리를 중시하지 않은 것도 그런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당대에 훌륭한 실용서의 하나였을 법한 이 책은 지금은 값진 인문학서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풍석이 집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허황되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잘하는 자가 주민들 사이에 끼어서 기분을 잡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며 인심 좋은 동네에 자리 잡는 것을 완결로 삼은 것이 그 값어치를 더욱 빛낸다.

조선후기 화가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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