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가운데 가장 한심한 기사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자사가 뉴스거리가 되는 경우다. 자사를 과장 홍보하는 뉴스는 그래도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언론이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버려 스스로 억지스러운 방어를 하는 꼴은 안쓰러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는 듯 하다.
홍석현씨가 삼성과 정치권의 검은 돈 거래의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삼성과 중앙일보가 공개 사과할 정도로 폭로된 내용이 상당부분 사실이라고 한다면 홍씨를 삼성과 정치권을 위한 심부름꾼 정도로 부르는 것은 분명 홍씨가 한 일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홍씨는 역설적이게도 훨씬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앙일보 사장이었던 홍씨는 삼성가의 일원으로써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여야 정치권과 어떤 거래를 해야 하는지 코치를 해주는 장자방 역할을 했고, 한나라당 등 보수 정당에게는 삼성의 돈과 중앙일보의 정보력을 매개로 해서 선거전략 자문 역까지 맡았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 홍씨가 이런 일들을 도덕적 고민을 하면서 어쩔 수없이 저지른 것 같지는 않다. 홍씨는 삼성과 한나라당, 그리고 중앙일보를 위해서 그 같은 역할을 자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대자본과 정치권력, 언론을 오가며 역동적인 영향력을 스스로 창출하고 있다는 뿌듯한 자부심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폭로가 단순한 사건이 아닌 비극과 절망이 된 것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능력있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홍씨의 개인적인 몰락 때문이 아니다. 후안무치와 표리부동의 지식인의 몰락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다.
우리를 진정 슬프게 하는 것은 홍씨가 다름 아닌 언론사 사장, 즉 언론인의 신분으로 검은 거래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홍씨가 차라리 삼성의 기업인으로써, 또는 정치인으로 그런 일을 했다면 우리는 그렇고 그런 정경유착의 또 다른 사례로 마음을 정리하고 사회적인 처벌을 가하면 된다.
언론의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언론은 정치처럼 큰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기업처럼 큰 자본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대신에 언론은 한 국가공동체의 문화이고 정신이고 시민의 자존심이다. 우리가 근대 언론 역사 100여년이 지나도록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신뢰할 만한 언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일천한 정신적 문화적 기반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앙일보 사장으로서 홍씨가 행한 일은 언론을 마치 정치권력과 자본의 사이에서 정보를 거래하는 시녀 정도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익히 들어왔던 정치-경제-언론의 유착 관계로 추상화 시켜 버리기에는 너무나 적나라하다. 선거자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편집국장이 동원되기도 했다. 아마 기자는 정보원 역할을 했을 터이다.
사장과 편집간부가 정치와 자본의 하수인이 된 마당에 기사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뭐 그리 소중할 수 있겠는가. 지난 몇 차례 대선 때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등 몇몇 언론들이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편드는 보도를 일삼은 진정한 이유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됐다.
언론의 불공정 편파보도는 선거철의 일회성 현상이 아닌 보다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언론과 자본, 정치권력과의 거래, 그리고 그에 따른 언론의 편파보도는 거의 관행처럼 됐다.
언론은 이런 은밀한 거래를 하도 대담하게 하고 편파보도에 대한 외부비판을 방어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 있어 반성이나 자성의 여지가 없다. 은밀한 거래로 언론을 스스로 바보로 만들었던 홍씨는 1999년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을 아무렇지 않게 주장했다.
신문에도 품질이 있다고 하듯이, 정파적 신문에도 수준이 있다. 언론의 정파성은 서구에서 보듯 한 사회의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서 보수와 진보가 토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 언론의 정파성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언론의 정파성은 정치권력과 자본과 거래 과정에서 파생된 일차원적이고 야만적인 특정세력 편들기 일뿐이다.
최영재(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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