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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도청과 연정

입력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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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내놓겠다며 제기한 연정론과, 5년 전 문민정부가 장막 뒤에서 저지른 도청 사이에는 공통된 점이 하나 있다. 국정을 살리기 위해 야당의 참여를 호소한 ‘애국적’ 제의와 실정법을 정면으로 어긴 범죄 사이에 공통점이라니, 노 대통령이나 여당이 발끈할지는 모르겠다.

-권력 내맘대로 사용 공통점

그러나 도청행위와 연정발상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바로 권력의 문제이다. 손에 쥔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잘못이다. 도청이 권력의 타락이자 오용이라면, 연정 제의는 권력의 과용이자 남용이다.

과연 도청은 무서운 권력이다. 완벽하게 감추어야 할 비밀이 만인에게 공개되고, 또 이로써 도청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비밀이 비밀을, 범죄가 범죄를 폭로한 게 안기부 도청 파문이다.

그래서 백성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 버렸다. 권력자들에게 영원한 비밀이었어야 할 일들이지만 주권재민의 헌법을 가진 국가에서 백성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알고 규명해야 할 일들이다.

검찰이 하건, 특검이 하건 도청 사건에서 밝혀야 할 의혹들은 산적해 있다. 그러나 더 큰 본질적 사실 하나가 이미 밝혀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권력의 타락과, 그 적나라한 실상이다.

권력이 왜 견제 받고 감시 받아야 하는지, 항상 의심돼야 하는지를 도청 파문은 말하고 있다. 도청이 장막 뒤에서 권력을 만들고 세상을 농단했다면 이젠 장막을 걷어내고 세상이 권력을 심판할 차례이다.

시중의 논란처럼 도청이 먼저냐, 도청내용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굳이 말하자면 둘 다 먼저다. 도청의 문제를 앞세운다고 해서 정치권력과 삼성 및 언론권력이 결탁해 저지른 범죄를 유야무야할 수 없다. 반대로 그 범죄에만 집착하다 국가기관이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 중죄를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

어느 누구라도 한 쪽만을 부각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 불순한 의도를 의심해야 한다. 명색에 법치국가에서 중인환시리에 드러난 범법인 만큼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체통과 국민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

법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에 대해 범죄의 입증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돈 배달에, 선거 개입으로 법과 국민과 언론의 자존심을 짓밟은 기업과 언론사주를 무죄방면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처신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이미 확보했던 증거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수사를 재개해야 할 것”이라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경청할 만한 말이다.

노 대통령의 연정 제의 역시 밀실 토론에 아이디어로 끝났으면 딱 좋을 일이다. “우리의 제안은 실질적으로 정권교체 제안”이라느니 “이는 두 차례의 권력이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말들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연정제의는 대통령을 그만두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대통령은 그만두겠다고 마음대로 그만두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직의 사퇴는 자유나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못 볼 일들 자꾸 보여줘

헌법이 정한 대통령직의 위상과 권한을 함부로 변경하는 발상, 그리고 이를 정치적 흥정 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대통령을 백성이 목격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무한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보고 있다.

낮은 지지도와 심각한 국정실패로 노 대통령은 깊은 좌절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 권력이니 내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라면 국민은 이중으로 당하는 것이다. 보지 말아야 할 일들을 오늘도 봐야 하니 딱한 노릇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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