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거사 청산 안병직 등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1만8,000원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김동춘 등 지음 민주사회정책연구원 발행ㆍ1만3,000원
해방 된지 60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친일문제를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며 국가권력에 의해 발생한 범죄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5월3일 많은 논란 끝에 국회에서 과거청산법이 통과했지만, 대상과 접근방법을 놓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여론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농후하고, 정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과거청산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데 발 맞추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책 두 권이 나왔다.
‘세계의 과거사 청산’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아래 2002년부터 2년 여간 진행된 ‘역사와 기억-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한 30여명의 학자들 가운데 안병직 서울대 교수 등 11명이 학문적 결과를 일반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으로 펴냈다. 우리와 유사한 아픈 역사를 지닌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 등의 사례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과거사 처리 방식을 둘러싼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저자들은 우선 우리에게는 모범적인 과거청산으로 알려진 독일의 나치 청산과 프랑스의 대독 부역자 처벌을 다루면서 ‘사법적 청산과 숙청’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들이 주관한 ‘탈 나치화 작업’은 강요된 과거청산이었기 때문에 독일 국민들이 진정 반성하고 참회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본다. 침략전쟁의 책임을 파헤치고 단죄하는데 그쳐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한 규명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철저한 친일청산의 당위성을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되는 프랑스의 전후 처리도 수많은 허점과 후유증을 가지고 있다. 재판 없이 이루어진 약식 처형과 독일군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공개적인 폭력을 행사한 행위는 나치의 인권유린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부역 지식인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처벌론과 관용론이 맞서 갈등과 혼란만 초래 했던 것도 프랑스식 과거청산이 지금 긍정적으로 평가 받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반면 책은 인적ㆍ제도적인 청산이 아닌 ‘망각’에 의해 과거를 묻어버린 스페인의 경우를 일방적으로 실패라 규정 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를 들춰 또 다른 내전을 촉발시키기보다는 관용과 화해로 평화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독재정권에 대한 처벌에 한계를 보였지만, 군부를 무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과거 청산을 이뤄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국가들의 사례 분석을 통해 책은 과거청산은 단순히 처벌과 단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성찰과 관용을 통한 미래 지향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과거청산이란 짧은 시간에 종결되지도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양상을 달리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책은 우리 사회의 과거청산 논란이 처벌과 관용 두 가지로만 단순화 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청산 작업은 국민 대다수의 내면적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치권에도 따끔한 메시지를 보낸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펴낸 반년간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도 하반기호 특집 ‘역사와 진실, 과거와 대면하기’를 통해 과거사 문제를 논쟁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과거청산의 성격과 방향’을 제시하고, 한운석 상지대 연구교수가 독일 과거청산의 한계와 성과를 논한다. 또한 6.25 와중에 벌어진 보도연맹사건과 군사정권 시절 발생한 의문사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도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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