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77) 이집트 대통령이 28일 출마의사를 공식 표명함으로써 이집트 정가가 대선정국으로 본격 돌입했다.
9월 7일 실시되는 이집트 대선은 특별한 야당 후보가 없어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기 6년의 5번째 대통령직을 확정짓는 통과의례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무바라크는 부통령 시절인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이슬람 극우주의자에 암살된 뒤 같은 해 의회 지명과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사다트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아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던 무바라크는 사건 직후 계엄령을 발동해 지금까지 이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무바라크의 출마선언은 예견됐던 것이어서 국민 대다수는 그의 5연임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4년째 계속되고 있는 계엄정국에 대한 염증,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민주화 바람, 5월 통과된 개정헌법 등이 반 무바라크 운동을 촉발시킨 배경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점증하는 국내외 민주화 압력에 굴복, 5월 대통령 선거에 복수 후보의 출마가 가능토록 헌법을 개정했다.
이전까지는 무바라크의 국민민주당(NDP)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가 3분의 2의 지지로 단일 후보를 지명하면 국민투표에서 이를 승인하는 사실상의 ‘체육관 선거’였다. 그러나 개정헌법 역시 무소속후보의 출마를 사실상 봉쇄하는 등 내용면에서는 민주화의 흉내만 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야당들은 “9월 대선은 들러리만 서는 정치적 촌극”이라며 잇따라 불참 선언을 하고 있다. 재야단체 ‘키파야(‘충분하다’는 뜻) 운동’은 선거 보이콧은 물론, 카이로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무바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6년의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인 지가 초점이 되고 있다. 그가 5연임에 성공한 뒤 임기 도중 차남인 가말 무바라크(42)에 권좌를 넘기는 부자세습을 시도할 것이라는 설이 정가에는 파다하다.
실제 이집트 주간지 ‘알 미단’은 최근 이집트를 방문한 로버트 죌릭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민주적인 방법’이라는 단서 하에 “대권을 아들에게 승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집트가 정치안정을 유지하고, 미국의 국익에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부자세습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익이란 이집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보장 등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중동 민주화 운운했던 미국이 현실적 이익을 얻기 위해 독재자와 더러운 타협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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