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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딸에 조국의미 알려줘야죠" 벽안의 父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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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딸에 조국의미 알려줘야죠" 벽안의 父情

입력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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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조국을 되돌려주고 싶어 왔습니다.”

29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 벽안의 한 중년 남성이 깔깔거리며 교정을 뛰어다니는 꼬마를 쫓아다녔다. 땡볕더위도 잊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술래잡기를 하는 두 사람은 미국 프린스턴대 미구엘 센테노(Miguel A. Centenoㆍ48ㆍ사회학) 교수와 그가 입양한 딸 마야(8ㆍ한국명 백선희).

고려대 하계대학 ‘인터내셔널 서머캠퍼스(International Summer Campus)’에 초빙돼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머물고 있는 센테노 교수는 “8년 전 입양한 딸에게 조국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땀으로 흠뻑 젖은 마야의 작은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예일대 등 미국 명문대에서 각종 학술상을 휩쓴 센테노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전쟁과 국가성립’(2002) 등 지역분쟁 등을 주제로 한 7개의 저명한 저술로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 받는 석학이다. 고려대에서는 국내외 대학생들에게 ‘사회학 이론’과 ‘민주주의와 국제분쟁’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센테노 교수 역시 쿠바 아바나 태생이다. 열 여섯 소년시절이던 1964년 가족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지금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라틴 아메리카의 국제분쟁과 사회주의의 변화 등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직도 쿠바의 정경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며 “한국 방문이 마야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센테노 교수 부부가 입양을 결심한 것은 첫째 아들 알렉스(11)를 낳고 의사로부터 더 이상 출산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8년 전. 아이를 더 원했던 센테노 교수와 부인 바버라(작가)는 입양을 생각하게 됐다.

이들 부부가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된 갓난아이 ‘선희’의 사진을 보고 홀딱 반하면서 입양은 단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1997년 4월 ‘선희’는 필라델피아로 왔다.

장래희망이 ‘여왕(Queen)’이라는 천진난만한 마야에게 미혼모로부터 버림받은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센테노 교수는 “마야는 어제는 벨리댄서, 오늘은 의사, 또 언젠가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해 바버라와 나를 늘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며 껄껄 웃었다. 마야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동대문’. 마야와 함께 동대문 근처로 갈 때면 ‘This, this(이거 사주세요)’를 연발해 달래기가 힘이 든다.

마야가 한국말을 아주 빠른 속도로 깨치는 것도 신기하다. 주당 20시간 우리 말을 배우는 마야는 고려대 하계대학 ‘한국어’ 강좌 최연소 수강생. 센테노 교수는 “갓난아이 때 입양해 한국말을 전혀 못하던 아이가 금세 한국말로 인사도 하고 한글을 읽을 줄 알게 됐다”며 “마야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기뻐했다. “마야에겐 입양이 축복이었던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센테노 교수는 “오히려 마야가 우리 가족을 완성시켰다”고 말했다.

센테노 교수는 8월 말 한국을 떠나기 전 가족과 함께 마야가 태어난 부산을 찾아 문화재와 해운대, 광안리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도 반드시 한국을 다시 찾을 것”이라며 마야의 작은 볼에 입을 맞췄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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