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27일 밝힌 협상안을 보면, 총론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한반도 비핵화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접점 모색이 쉽지않은 대목이 많다. 회담 초반에는 최대 요구치를 던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협상안만을 근거로 회담의 장래를 예단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북미 양측의 협상안은 북한 핵 폐기 의지 선언과 이에 따른 상응조치를 ‘말 대 말’수준으로 합의하자는 것으로 폐기 실천까지의 전 과정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향후 실행 계획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측 협상안은 ‘북한의 핵 폐기 선언→대북 안전보장, 투자 및 교역 등 경제협력 약속→미사일 인권 등 해결 추진’의 구두 약속을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핵 위협 제거 의지 표명과 북측의 핵 폐기 약속→미국의 북한 전복 정책 포기, 평화공존장치 마련 약속→비핵화 실천의 의무사항 합의’라는 논리로 맞섰다.
양측 협상안의 총론은 일단 평가할만하다. 미국은 대북 안전보장에 대해 보다 확실한 언질을 했고, 북한도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과의 평화공존의지는 결코 레토릭(修辭)이 아니다”고 확언했다. 상당한 강도다.
또 김정일 위원장을 처음으로 ‘위원장(chairman)’으로 호칭했다. 최고의 성의를 보인 셈이다.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자 최고수뇌부의 확고한 의지라고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협상안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긍정적 진전이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할 경우 투자 및 교역 등 경제협력을 한다는 약속을 밝혔다. 테러지원국 명단삭제와 경제봉쇄 해제를 요구해온 북한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또 관계정상화에 착수하겠다는 말로 북측의 안보우려를 반영했다.
하지만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 등 각론에서는 많은 암초가 산재해있다. 먼저 북한은 핵 폐기 선언과 동시에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측의 언질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최우선 순위로 거론했다.
반면 미국은 국교정상화는 6자회담의 마지막 수순으로 상정했다. 관계정상화 약속은 핵 폐기 완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인권, 미사일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발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범주를 북핵 제거 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핵 보유 및 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넓게 해석했다. 전세계 미군의 기동화를 추진하는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구다.
또 남한의 핵 우산 철폐 등 이행이 까다로운 대목도 있다. 결국 북한은 핵 폐기 약속을 하면서 얻을 것을 최대한 얻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따라서 향후 협상은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개념을 얼마나 축소하고, 미측이 관계정상화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있는 것 같다.
베이징=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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