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원들이 임기 만료 후 로비스트로 변신하는 사례가 급증해 의원직이 아예 로비스트가 되기 위한 ‘디딤돌(stepping stone)’로 전락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7일 보도했다.
로비업계는 그동안 의원들이 게으르고, 체면 때문에 부탁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로비스트로 고용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로비 수요가 급증하면서 연봉이 천문학적으로 뛰었고, 선거에서 의원들의 물갈이 폭이 커지면서 의원출신 로비스트가 급증했다.
진보적 로비그룹인 ‘퍼블릭 시티즌’이 처음으로 ‘의원_로비스트 출신 관계’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이후 민간으로 복귀한 상ㆍ하원 의원 198명 중 절반에 가까운 86명(43%)이 로비스트로 변신했다.
당적으로는 공화당 출신이 민주당 출신보다 훨씬 많았다. 전체 86명 중 공화당 출신 로비스트는 3분의 2가 넘는 58명이었고, 민주당 출신은 28명에 불과했다. 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이 지난해 재집권에 성공하고, 상ㆍ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공화당 의원들의 영향력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원보다는 상원의원이 로비스트가 되는 경향이 더 많았다. 이 기간 중 ‘K 스트리트’로 옮긴 상원의원은 18명(공화당 12명, 민주당 6명)으로 전체 36명의 절반을 차지했고, 하원의원은 162명 중 42%인 68명(공화당 46명, 민주당 22명)이었다. K 스트리트는 워싱턴 도심의 거리 이름으로, 로비스트 사무실이 밀집해 있어 로비업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의원직이 로비스트가 되기 위한 준비단계 정도로 전락하자 퇴임한 의원의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러셀 페인골드(민주당ㆍ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은 “상ㆍ하원 원내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고, 의사당 체육관 등 의원 이용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권리를 로비스트로 변신한 전직 의원들에게는 제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퍼블릭 시티즌의 프랭크 클레멘트 국장은 “국민이 뽑은 대표가 얼마나 자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지를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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