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퇴임하는 최종영 대법원장 후임 인선을 놓고 각계 이해 당사자 간 로비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던 관행에 비추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념 갈등이나 ‘자기 편 심기’ 양상으로 흐를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서울중앙지법의 모 부장판사는 27일 장문의 문건(A4용지 17쪽)을 언론에 배포했다. “새 대법원장이 전ㆍ현직 대법관 가운데 나오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겠다”는 내용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기관장 인사를 앞두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전례가 없다.
그는 “재야 변호사 출신이 대법원장에 임명돼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보고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내 의견에 동조하는 법관들이 많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진보성향 단체들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공동발표문에서 “이번 대법원장은 반드시 외부 인사가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국민의 뜻보다 법원 내부의 위계질서에 따라 선정돼 온 대법관들은 과거 우리 사법사 왜곡의 ‘공범’으로, 관료사회의 타성에 젖어 개혁과 거리가 먼 사람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도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상(像)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ㆍ환경 등 분야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물”을, 여성계는 “양성평등을 구현할 인물”을 첫 조건으로 내세웠다. 뿐만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각 지방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다음달 1일 5명의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법원일반직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환경문화시민연대 등도 ‘범국민 추천위원회’를 결성해 다음달 청와대에 후보를 추천키로 했다. 의정부지법의 한 판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내가 기대하는 다음 대법원장은’이라는 게시판까지 개설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법부 개혁의 요구가 높아진 데다, 이번 인선이 그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새로 임명될 대법원장은 현 정부 임기 중에만 9명의 대법관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된다. 누가 대법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성향과 색깔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 임명제청 뿐 아니라 헌법재판관 3명과 중앙선관위원 3명, 국가인권위원 3명에 대한 지명권과 부패방지위원 3명에 대한 추천권을 갖고 있다.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이다.
때문에 대법원장 인선도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2공화국 헌법처럼 법관들의 투표로 대법원장을 선출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장영수 고려대 교수), “추천기구를 제도화해 국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등이다.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은 “제 몸에 딱 맞는 맞춤복을 꿈꾸기 보다 여러 기성복 가운데 가장 몸에 맞는 차선책을 골라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기 이익만 내세우지 말고 공통분모를 찾아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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