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는 겉보기 비슷하거나 그럴 듯한 것을 가리킨다. 원래 사시이비(似是而非)에서 나온 말로, 언뜻 옳은 듯하지만 잘못된 것을 뜻한다. 공자는 일찍이 모든 사이비를 혐오하면서(惡似而非者), 그 해악을 이렇게 비유했다.
“강아지 풀은 곡식의 싹과 혼동하게 하며, 망령됨은 정의를 혼란시키며, 세속과 야합하는 위선자는 덕을 어지럽힌다”. 이렇듯 사이비가 끼치는 해악은 크고 깊다. 시대를 가림 없이 세상을 진정 정의롭게 하려면 사이비와 진짜를 잘 가려야 한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은 우리 사회에 사이비가 판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독재청산을 떠들면서 도청을 통치수단 삼은 YS부터 사이비다. 그저 얻은 언론권력에 의탁해 국제적 언론인으로 행세한 홍석현 씨도 도청내용대로 재벌과 정치권의 거간 노릇을 일삼았다면 사이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보다 한층 개탄스러운 것은 불법도청과 도청내용의 범죄성을 놓고 법과 정의의 본질을 왜곡하는 사이비 주장과 논리가 횡행하는 현상이다. 이미 드러난 사이비를 지탄하는 것보다, 사회적 논의를 그릇되게 이끄는 사이비를 분별하는 게 훨씬 긴요하다고 본다.
■여론이 정보기관이 엿들을 일조차 없을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듯한 불법도청보다 재벌과 언론사주의 범죄성에 먼저 분노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명색이 법과 정의를 위한다는 법률가들과, 입만 열면 국가권력 남용을 경계하고 인권과 자유를 외치는 시민 운동가들이 그런 여론을 앞장서 선동하는 것은 어이없다.
불법도청은 건성 나무라면서 도청기록에 드러난 불법정치자금 거래를 파헤치라고 목청 높이는 것은 스스로 표방한 이념과 가치를 여론의 소용돌이에 내던진 자기 기만(欺瞞 ) 또는 자기 부정이다.
■도청은 불법수색 체포 고문 등 적법절차를 어긴 국가기관의 모든 행위가 그렇듯이 원천적으로 정당성이 부정된다. 아무리 중대한 범죄증거를 발견했더라도 단호하게 배척할 수 밖에 없다.
전체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국가의 부당한 침해에서 지키는 것이 개별 범죄를 처벌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훨씬 중차대한 때문이다. 이 명백한 사리를 외면한다면, 국가권력 남용을 견제할 근거와 명분을 잃게 된다.
그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시비를 흐린다고 해서, 언론과 시민단체까지 정의를 혼란시키는 망령된 논리를 좇는 것은 어리석다. 거대 권력이니 거악 이니 떠들지만, 국가보다 더 크고 위험한 권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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