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테러범은 파키스탄 출신이 많은가. 왜 지하드(이슬람 성전)는 파키스탄인의 피를 끓게 하는가. 파키스탄 정부는 부인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제 ‘테러 공장’이란 꼬리표는 떼어놓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1차 런던 테러범 4명중 3명이 파키스탄 출신이고, 2명은 마드라사(이슬람학교)에서 교육 받았다. 비록 번복은 했지만, 2차 런던테러, 이집트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수사당국은 파키스탄인들을 지목했다. 서남아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중동 보다 더욱 강렬하게 지하드가 판을 치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궁금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7일 파키스탄의 교육제도, 역사적 유산, 그리고 정치ㆍ경제적 모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테러를 권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순교의 미학’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체계적으로 주입된다. 가령 10학년용(15세 대상) 파키스탄 역사교과서는 “지고 지순한 지하드는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며, 그 대가는 순교자로서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도시의 빈민가에선 ‘이교도’(서방)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격문이나, 지하드를 강조하는 스티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강경 이슬람근본주의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19세기 중엽 영국 식민지 시절 발생한 이슬람 부흥운동인 디오반디즘은 파키스탄의 수니파 근본주의의 요체다. 이교도에 맞선 지하드를 강조하는 이 종파는 파키스탄의 정치혼란, 주변정세와 맞물려 세력을 확장해갔다.
특히 전국에 있는 1만3,000여 마드라사(종교학교)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디오반디즘을 가르친다.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 무슬림들이 이곳에서 근본주의 세례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이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벌였다.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은 바로 지하드의 배후기지여서 근본주의 세력이 한창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소련 축출 이후도 파키스탄은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인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직간접으로 지원했다.
마지막으로 정치경제적 모순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파키스탄은 1947년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이후 민간정부가 부정부패에 빠지면서 군부쿠데타가 20년 주기로 세 차례 발생했다.
정치혼란과 경제피폐는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려 놓았다. 특히 정치세력은 카슈미르 분쟁을 비롯한 인도와의 대립에서 근본주의 무장세력을 자극해 이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마드라사에 대한 조사와 무장세력 소탕을 내외에 발표했지만, 전망은 회의적이다. 오히려 독재정치가 이슬람근본주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민주화가 해결책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해 민정이양 약속을 어기고 2002년에 5년 임기 대통령에 취임한 무샤라프는 미국을 업고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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