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고수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서울대 총장은 고교평준화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매체는 물론 내로라하는 논자들도 고교평준화의 찬반 논쟁에 가담해 열을 올린다.
그런데 ‘고교평준화’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고교를 학군으로 묶고,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해당 학군 안의 고교에 배정하도록 한 제도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렇다면 ‘고교학군제’일지언정 결코 고교평준화는 아니다. 굳이 ‘평준화’를 말하기로 한다면 ‘중학평준화’다.
현재 정규 고교는 2,080개교 정도, 재학생은 175만 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일반계는 약 3분의 2(학생수는 약 4분의 3)이고 나머지는 실업계다. 정규 고교 외에도 방송통신고교를 비롯한 각종 학교가 있다.
그러나 고교학군제는 23개 시(市) 지역에서만 겨우 실시하고 있으며, 이에 속한 고교는 일반계의 절반(학생수는 5분의 3) 수준이다. 정규 고교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고교평준화란 실체없는 허구다. 전국 모든 고교가 평준화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동일 학군 안에서도 학교마다 졸업생의 학력차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실상이다.
고교학군제는 사회 통합을 방해한다. 학교 선택권을 박탈했으므로 주거지를 옮기지 못하면 다른 학군의 고교에 진학할 수 없을 뿐더러, 학군제 지역과 비학군제 지역을 격리한다. 미션스쿨에 배정받은 학생이 종교 자유를 부르짖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립고까지 학군에 예속시킨 것은 고교학군제의 가장 큰 피해다. 이런 사례는 전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립고들은 해방 전보다도 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자립형 사립고교’를 운운하지만, 이런 이상한 용어를 들으면 외국인들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자립형이 아닌 사립고도 있다는 건가?
우리도 선진사회의 교육제도를 본받고자 한다면 하루 속히 고교학군제를 해체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선지원 후추첨제 지역을 더욱 확대하고, 학군을 광역화하도록 한다. 동시에 원하는 사립고는 모두 학군에서 풀어주도록 한다. 그러면 특목고, 영재고, 국제고 등은 물론 ‘공영형 자율학교’와 같은 괴상한 이름의 학교를 새로 만드느라 고생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최근 비학군제 지역 고교의 학력 향상이 두드러진다. 이들 덕분에 ‘고교평준화’의 허상이 저절로 사그라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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