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잔인해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겨우 봤지 뭐야. 도끼로 머리를 찍고, 특히 갈라진 배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구치는 장면은 너무 끔찍했어.
총에 맞아 동물의 사지가 갈갈이 찢겨 공중으로 흩어지는 장면은 속이 울렁거릴 정도더라.” 극장문을 나서면서 한 관객이 말한다. 무슨 영화를 보고 나온 것일까. 혹시 공포영화? 예상과 달리 이 관객이 본 영화는 바로 ‘천군’이다.
개봉 전,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 재심의를 신청해 15세 관람가로 개봉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거로 간 남북한 병사가 힘을 모아 날건달 생활하는 이순신을 깨우쳐 성웅으로 만든다는, 청소년에게 재미 주고 교훈 되는 이 건전한 이야기가 도대체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을까 너무도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유는 과도한 잔혹함이었다. ‘천군’은 목에 화살이 박히고 사지가 절단되는 등 극도로 잔인한 장면을 무려 36초나 걷어내고 나서야 재심의를 통과했다.
어느날부터 관객들은 영화 속 잔혹함에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박찬욱 감독 영화의 잔혹함 앞에서도, ‘달콤한 인생’이나 ‘혈의 누’에서의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폭력 앞에서도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됐다. 예전에 더한 것도 봤는데, 하는 식으로 무뎌진 탓도 있을 것이고, 넓어진 영화적 상상력을 존중하겠다는 방향으로 관람태도가 성숙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군’의 잔혹성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복수는 나의 것’의 잔혹함이 납득할 만 한 것은 주인공의 복수심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며 ‘혈의 누’의 잔혹함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천군’의 잔혹함에는 미학이 없다.
단지 맹목적이고 습관적으로 피 튀기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참으로 뜬끔 없는 것이었다.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동원해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대작 스타일로 영화를 포장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려, 사실적이고 잔혹한 장면을 삽입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퓨전에 퓨전을 거듭한 영화 ‘천군’에 가장 열광할 이는 중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5세 관람가이다 보니 합법적인 방법으로 중학생이 이 영화를 관람할 길은 없다. 어쩌면 잔혹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영화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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