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계가 ‘창조주’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재앙이 일어난다는 스토리는 너무나 낯이 익다. 이젠 고전이 되어버린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을 거치며 닳고 닳은 소재가 되었다.
‘스텔스’는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조금 낯설게 하기 위해 첨단 전투기의 힘을 빌린다. 전투기가 숨가쁜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현란한 액션을 연출할 수만 있다면 ‘시간 죽이기용 블록버스터’로서 역할은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의도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3인의 정예 파일럿이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을 탑재한 무인 스텔스기 ‘에디’를 추격하는 장면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찔하다.
공중급유기에서 유출된 기름이 거대한 띠를 형성했다가 폭발하는 장면과 여자 파일럿 카라(제시카 비엘)가 비행기 파편이 쏟아지는 가운데 낙하산을 펴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야기 전개와는 상관없이 제시카 비엘이 ‘눈요기’를 제공하고, 로맨스도 조미료처럼 첨가되어 한없이 가벼운 액션 대작을 기다렸을 관객들의 흥미를 돋울 만하다.
그러나 ‘스텔스’의 이야기 구조는 일관성이 없고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영화는 ‘에디’를 무리하게 실전 배치한 조지 대령(샘 세퍼드)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간첩행위를 서슴지 않을 때 갑자기 음모극으로 선회하고, 파일럿 벤(조쉬 루카스)이 명령을 거부한 채 연정을 품고 있었던 카라를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 들면서는 사랑이야기로 급전한다.
‘에디’가 스폰지처럼 사람의 모든 감정과 지식을 빨아들이며 진화한다고 하지만, 전우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장미를 느끼기 보다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첨단 비행기가 번개를 맞은 후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미군 전투기가 남의 나라 영공을 거리낌없이 휘젓고 다니다 미얀마와 타지키스탄에 은거하는 테러조직을 해당 국가의 동의도 없이 궤멸시키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앉은 자리가 불편하다.
자위권이라는 명목으로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나라든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의 일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레이’로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제이미 폭스는 파일럿 헨리 역을 맡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화면에서 사라지며 기대했던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북한이 언급된 장면을 수정해 국내 상영용 특별판을 따로 만들었다. ‘트리플X’ ‘분노의 질주’의 롭 코헨 감독. 28일 개봉. 12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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