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 아이들처럼 막 살라는 의미에서 동막골이라 이름 붙여진 이 마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멧돼지인데, 애써 일궈 놓은 밭을 헤집어 농사를 망치는데다 사람을 해칠 위험도 있어 그렇다.
멧돼지 같은 흉악한 동물의 위협 앞에서 사람들끼리 그저 보듬으며 사이 좋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막골 주민들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장진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연극을 박광현 감독이 영화화한 ‘웰컴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은 2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 시간 내내 착한 기운을 뿜어내, 보는 이를 반달눈으로 웃게 한다.
1950년 전쟁 발발 사실도 모르는 강원도 두메 산골에,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으로 쫓겨가다 대열에서 낙오한 인민군 중대장 리수화(정재영) 일행과 피난민으로 바글바글한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회의를 품고 탈영한 국군 소위 표현철(신하균) 일행, 사고로 동막골에 추락한 연합군 전투기 조종사 스미스가 흘러 든다.
수류탄을 보고도 “저기, 돌멩이나?”라고 물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동막골은 이념 갈등도 언어의 장벽도 모두 뛰어 넘어 모두를 친구로 만드는 마술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처마 위에는 빨간 고추가 환한 햇살을 받으며 널려 있고, 수류탄을 던져도 사람은 다치지 않고 대신 옥수수가 팝콘으로 바뀌어 눈처럼 흩날리는 완벽한 유토피아다. 동막골이 아름다울수록 언젠가 부서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조마조마하다.
살짝 정신이 나간 소녀 여일(강혜정)의 능청스럽고 천진한 표정은 동막골의 순수를 상징하고, 튀는 배우 하나 없이도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연극과 달리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가 강조됐다. 조그마한 꽃망울이 방울방울 맺힌 들꽃 벌판, 빨간 불빛이 새어 나오는 등불이 지키고 있는 마을 초입, 과장된 멧돼지 사냥 장면 등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구비구비 장면 장면마다 뿜어내는 적당한 힘이 영화를 탄탄하게 만든다.
사랑스러워야 할 장면에서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우스운 장면은 제대로 배꼽을 잡게 하고 또 비장할 곳에서는 비장한다.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으되, 민간인 거주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무조건 폭격 명령을 내리는 연합군의 모습 등을 통해 전쟁의 냉혹한 현실을 부각시켜 주제의식도 탄탄하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동료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음악을 만들었던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혹시 허락하지 않더라도 저희는 팬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끝맺는 제작진의 간곡한 편지에 감동 받아 선뜻 음악을 맡았다.
초반에는 약간 겉도는 감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영화와 완전하게 하나가 돼 동막골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8월4일 개봉.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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