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6일 홍석현 주미대사의 사표 수리 방침을 밝히면서 착잡함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는 분위기였다. 우선 2월22일 취임한 홍 대사가 5개월여만에 물러나는 역대 최단명 주미 대사가 됨으로써 ‘깜짝 인사’의 실패에 따른 책임론을 떠안게 됐다. 반면 홍 대사의 자진 사퇴로 X파일의 부담을 털고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고 있는 눈치다.
청와대는 이유를 딱 부러지게 밝히지는 않았으나 사표 수리는 X파일에 나온 홍 대사의 대선자금 전달 의혹 등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인사 검증의 문제점이 우선 지적되고 있다. 청와대는 “홍 대사 임명 때는 X파일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중앙일보 사장으로서 홍 대사가 부적절하게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시중에서 나돌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청와대의 전략적 판단이나 검증에 느슨함이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홍 대사 퇴진으로 금년 들어 ‘탈(脫) 코드 실용주의’ 인사를 확대해온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정책도 상처를 받게 됐다. 금년 초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 이어 홍 대사까지 실용 성향의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홍 대사 내정 당시 “비리로 구속된 바 있는 언론사주를 대사에 기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대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실용 인사라는 논리가 반대론을 압도했다. 때문에 홍 대사를 누가 추천하고 밀었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는 당시 “외교안보라인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결심했다”고 밝힌 적이 있어 추천자가 정동영 통일부장관이라는 얘기도 일부 있었다.
또 유엔 사무총장의 야망을 가진 홍 대사의 자천설도 있고, 열린우리당 실세 의원의 천거설도 있었다. 그러나 정 장관은 지난 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홍 대사 발탁은 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고 나는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고 논리적으로도 그 책임은 결정권자인 노 대통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홍 대사의 사퇴를 계기로 주목할 대목은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기류가 X 파일에 대한 철저한 조사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홍 대사 거취 외에는 X파일 문제로 우리가 고민할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여권의 고위인사도 “테이프 내용이 모두 공개된다면 한나라당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공세적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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