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 "가져온 노트를 서로 확인해야"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간 수석 대표 접촉은 이번 회담의 방향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중 하나였다.
북핵의 궁극적 당사자인 북미 양측은 상대방 의중과 구체적 회담전략을 탐색했다. 힐 차관보는 접촉 전 "북측 대표단과 익숙해져야 할 것 같고, 가져온 노트를 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대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예민한 부분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상대의 의욕을 부추기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간 북미 접촉은 회담 기간 중에만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회담 전날 이뤄졌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회담 틀 내에서만 북한과 접촉하겠다고 한 미측이 유연해진 것이다.
양측은 1차 회담 당시 본 회담장 구석에서 옹색한 접촉을 가졌고, 2차 회담 때에는 탁자가 없는 별실에서, 3차 회담에서는 탁자가 있는 별실에서 대좌하면서 모양새를 발전시켜왔다. 이번에 기필코 성과를 내려는 양측의 태도에 미루어 이날 접촉에서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양측의 대화 내용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관계 정상화 의지, 북한 정권에 대한 자세, 회담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할 지 여부 등 민감한 대목을 물었다.
미국은 북한이 과연 핵 폐기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관심을 표명했다. 힐 차관보는 핵을 폐기해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받을 용의가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동의하고 이를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대목이 4차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요체로 보인다.
미측은 이를 위해 북한이 관심을 갖는 안전보장문제, 핵 폐기 대가, 북미관계 정상화 등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일 수 있음도 내비쳤다. 때맞춰 북한이 핵 폐기 선언 후 조치에 들어가면 미국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한편 대북 안전보장 문서를 한국, 일본과 함께 만들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양측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공감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우리측 당국자는 “북측이 24일 남북 접촉, 이날 북미접촉에서 6자회담을 핵 군축의 장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며 “북측 태도가 현재까지는 유연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양측은 상대방이 원하는 수준의 답을 주지는 않았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 등 주요 쟁점들에 대한 입장은 26일 개막 인사말, 27일 기조연설 등을 통해 제시될 듯 하다.
베이징=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 연쇄 양자협의 낙관론 불 지펴
제4차 북핵 6자회담 개막을 하루 앞둔 25일 남ㆍ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 대표단은 다각도의 양자협의를 갖고 사전 조율작업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특히 회담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ㆍ북한과 미국이 이전 회담과는 달리 사전에 연쇄 양자회동을 통해 적극적인 의사 타진에 나서 본회의의 성과를 기대케 했다.
한국 대표단은 전날 북측 대표단을 만나 양자협의의 테이프를 끊은 데 이어 이날 오전 8시부터 90분간 대표단 숙소인 중국대반점에서 미국 대표단과 회동했다.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한 협의에서 양측은 본회의 대응방안에 대한 입장차를 조율했다. 회담을 마친 후 송 차관보는 밝은 표정으로 “매우 생산적인 협의였다”고 밝혔고, 힐 차관보도 “이번 회담에서 이뤄야 할 목표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에는 6자회담 본회의가 열리는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북미간에 처음으로 ‘회담 개막전 양자접촉’이 성사돼 회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양자회동 장소를 알아내기 위한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북한 대표단을 태운 차량이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베이징 시내를 20여분간 휘젓고 다녔지만, 취재 차량들이 곡예운전 끝에 회동 장소까지 따라붙는 숨바꼭질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대표단도 이날 한국측과 양자협의를 가진 데 이어 일본과 북한, 러시아와 잇따라 접촉하는 등 활발히 움직였다. 협상의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한 미국 내 협상파인 힐 차관보의 행보가 시선을 집중시켰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 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측은 오후 2시 중국대반점에서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 국장이 이끄는 일본 대표단과 만나 “핵 문제 논의에 집중하고 관심의 분산을 막자”며 납치자 문제가 의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본측은 그러나 이날 저녁 창푸공(長富宮)호텔로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 “납치자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6자회담에서 거론하는데 대해 참가국이 이해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국측은 “북일 양자접촉에서 논의할 수 있으나 6자회담에서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고 거듭 선을 그었다.
앞서 이날 오후 6시 30분 댜오위타이 6호각에서 주재국인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 주재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선 각국 대표단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상견례를 가졌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악대는 ‘아리랑’‘도라지’‘Moon River’등 각국의 민요와 가요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다.
베이징=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수석대표 면면/ 김계관·힐 모두 매파와 거리
제4차 6자 회담 각국 수석 대표의 면면만을 살펴 보면 회담 전망은 일단 낙관적이다.
지난 9일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회담의 극적 실마리를 풀어낸 미국 대표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북한 대표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부상은 모두 강경 매파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주한 대사를 역임한 힐 대표는 한국에 누구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다 미 국무부에서도 주고 받기식 협상에 능하다는 평이다. 협상 유연성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국통인 북한 김 대표는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미측과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끝에 ‘제네바 기본합의’를 끌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북한 정권 실세이자 ‘핵 외교 설계사’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등 실권과 협상력을 겸비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제2차 6자회담 때부터 참여한 김 대표와는 달리 힐 대표와 함께 이번에 첫 신고식을 치르는 한국 대표 송민순(宋旻淳) 차관보에게도 기대가 걸린다.
외교통상부 내에선 초급 외교관 시절부터 강대국에도 ‘할 말은 한다’는 민족의식을 보였던 송 대표가 북핵 협상을 맡게 돼 제격이라는 평이 나온다. 또 송 대표가 폴란드 대사 재직시(2001~2003년) 폴란드 대사로 먼저 와있던 힐 대표와 교분을 쌓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플러스 요인이다.
일본 대표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아시아대양주 국장도 이번 회담이 첫 무대다. 사사에 대표는 그의 외교 스타일과는 무관하게 ‘좀 빡빡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납치문제 등 일본 국내정치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 다만 사사에 대표는 미국과 한국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경제국장도 역임, 정무ㆍ경제를 망라하는 ‘잘 나가는’외교관이다. 북핵에 일단 돌파구가 열리면 그가 가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역시 이번이 첫 회담인 중국 대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의 주특기는 ‘조정능력’. 중국이 6자 회담의 거중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주한, 주일 대사를 지낸 우 대표의 조정력에도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우 대표가 얼마나 의사소통 창구역할을 할 지가 관심이다.
제3차 회담 때부터 참여한 러시아 대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은 서남아 전공으로 한반도 업무를 맡은 적은 없으나 현안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고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자기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형이어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베이징=송대수 특파원 dssong@hk.co.kr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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