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된 ‘안기부 X파일’ 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에서 추진중인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시행령 개정안이 수정 논란에 휩싸였다.
26일 관계부처 및 통신업계에 따르면 법무부에서 지난달 23일 입법 예고한 통비법 시행령 개정안의 일부 신설 조항이 휴대폰의 감청을 강제한 내용이어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문제가 된 조항은 다음달 27일 공표될 통비법 시행령 제 21조 5의 1항. 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를 규정한 이 조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제한조치 및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에 필요한 설비, 기술, 기능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전화 및 휴대폰을 운영하는 유무선 통신사업자이며 통신제한조치는 모법인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감청 및 우편검열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법대로라면 이동통신사업자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휴대폰 감청 시설을 갖춰야 한다.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업체들은 해당 조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고 있어 수정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폰 감청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며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동통신업체들과 협의를 한 결과 법무부에서 기술이나 비용면에서 부담이 되는 부분은 제외하도록 예외조항 등의 수정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휴대폰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온 정부가 휴대폰 감청을 전제로 한 ‘어처구니 없는’ 조항을 넣게 된 것은 관계부처 및 통신업체들과의 의견 수렴작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지 협의를 거치지 않고 통비법이 입법예고됐다”며 “통신업체보다는 수사에 비중을 둔 의견이 우선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이 달 들어 수 차례 법무부에 휴대폰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아직 법무부의 응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는 “시행령이 그대로 공포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통신업체마다 관련부서별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YMCA도 통비법 시행령 개정안이 모법인 통신비밀보호법에 명시된 통신비밀보호와 위배되는 만큼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의 논란 조항
제 21조 4: “피의자, 피내사자가 아닌 다수인에 대해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청할 경우 1건의 허가청구서에 의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에는 실시간 위치 및 통화 내역 등의 자료를 요청하려면 대상자 1인당 1건의 법원 허가청구서가 필요했으나 시행령에서는 복수의 대상자도 1건으로 처리하도록 수정.
제 21조 5의 1항: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제한 조치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에 필요한 설비, 기술, 기능 등을 제공해야 한다” 유,무선통신에 대한 감청 설비 의무화.
제 21조 5의 2항: “시내전화(6개월)를 제외한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보관 기관을 12개월로 하고 인터넷의 로그 기록 자료는 6개월로 한다” 일반 전화와 인터넷 접속 기록은 6개월, 휴대폰 통화 내역은 12개월 동안 보관.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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