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정권을 잡고 있는 참여정부의 잘못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참여정부는 주장한다.
수출이 잘되는데도 성장률이 낮은 것은 내수가 부진하기 때문이며, 내수가 그 동안 위축되었던 것은 국민의 정부 후반 과도한 가계대출이 이뤄지고 특히 신용카드의 거품이 꺼지면서 불가피했던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신용카드 위기나 가계채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방책을 마련하였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03년 이후 신용카드나 가계부채 위기가 겉으로는 외환위기와 매우 다른 것 같이 보여도 사실 뿌리는 같다. 정부가 성장률에 너무 집착하고, 관련 부처나 공공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했으며,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이 발휘되지 못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복된 위기 뿌리는 같아
대통령이든 총리이든 집권세력이 성장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경기 후퇴기에 경기부양책을 행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추경이나 감세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결국 국민의 간접적 동의를 받는 것이다. 이는 우리도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정책금리를 낮추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진다. 독립성이 높으면 중앙은행의 금리정책 결정은 정부가 바라는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통한 통화가치의 안정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도 매우 중요하다. 금융감독기구가 1997년 이전부터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은행 등 금융기관이 부실 재벌에게 막대한 여신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에 더하여 80년대 말부터 중앙은행의 시중은행에 대한 외화예탁제가 없었다면, 한국은 외환금융위기를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러기준 1인 당 국민소득 1만 달러 회복에 7년을 잃고, 외환위기로 야기된 양극화 심화에 10년 이상 허송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기구는 통합되었지만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은 주어지지 않았다. 독립된 감독기구가 있고 중앙은행과 사전협조가 잘 이루어졌다면, 신용카드나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조치는 2002년 중 후반이 아니라 1, 2년 앞서 단행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경우 지난 두 해의 성장률은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금융감독기구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경기부양을 도우라고 설치된 조직이 아니다.
선진국에서와 같은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과도한 경기대책, 또는 잘못된 정책조합에 의해 언제라도 제3, 제4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한 해의 성장률을 잠재성장률 가까이 올리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책결정 주체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발족 직후 신용카드 위기의 발발은 이런 제도개혁의 기회를 제공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국민경제를 2년 이상 혼란에 빠뜨리는 쓰라린 경험을 했으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너무 불안한 일 아닌가?
-금융감독기구에 독립성을
일본도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에 충분한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아, 세계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거품을 방관하다가 너무 늦게 조치를 취하였고, 정책대응이 너무 늦은 바람에 거품이 터지면서 10년 이상을 잃어버렸다.
남의 일이 아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으로서 외환위기, 가계부채위기에 이어 제3의 위기를 예방할 방법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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