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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청(盜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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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청(盜聽)

입력
200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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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늘 말조심을 하라는 가르침이지만 한편으로 누가 자신의 말을 엿들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고, 거꾸로 남의 말을 엿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언제든 있게 마련임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남의 말을 엿듣고 싶어하는 인간 심리는 본능적 호기심에서 비롯하며,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정보 수집 욕구와 닿아 있다. 이런 욕구는 개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사회조직의 중심부는 조직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정보 수집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상 어떤 정치권력도 부하들의 충성도, 또는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려는 욕구를 떨치지 못했다. 다양한 정보 수집 방법이 동원됐지만 당사자의 말을 도둑질해 듣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었다. 경찰조직이나 정보조직에서 도청(盜聽)이 기본 업무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사생활의 자유나 통신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확립되면서 도청이나 감청에 헌법적 제약이 가해졌지만 국가안보를 비롯한 ‘공공의 이익’을 다 넘어서진 못했다. 남의 말을 ‘합법적으로 도둑질할’ 여지가 여전한 불씨로 남았다.

■국내에 ‘도청’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화’(the Conversation)는 도청 피해자의 심리적 황폐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면서 자아를 상실해 가는 주인공(진 해커먼)의 모습은 많은 증언으로 우리 귀에도 생생해진 고문 피해자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민주사회는 고문에 의한 자백과 마찬가지로 도청으로 획득한 자료의 증거능력을 100% 부인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고문과 도청이 살인에 버금가는 극단적 인권 침해이고,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다.

■나라 안이 도청 문제로 떠들썩하다. 정치권력의 사주를 받은 정보기관의 도청 행위 자체가 잠시 도마에 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도청 내용 자체에 여론의 화살이 집중적으로 꽂히고 있다

. 재벌과 거대언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정치권력이 ‘합법적 도둑질’의 여지를 넓히려는 유혹을 받을 만한 상황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어떤 인권도 하늘에서 떨어지진 않았다. 고통과 희생에서 싹튼 자각과 피투성이 싸움으로 따냈을 뿐이다. 도청 당하지 않을 권리를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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