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사건 보도가 언론사별 입장차이로 인해 꼬리 자르기, 상호 비방 등의 이전투구로 왜곡돼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처음부터 사건 당사자로 지목된 중앙일보는 그 동안의 소극적 보도태도를 바꿔 25일자에는 3개 면에 걸쳐 관련 기사를 실었으나 대부분 자사의 입장을 강변하거나 타 언론사도 나을 것이 없다는 내용으로 채웠다.
중앙일보는 우선 이례적으로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국민과 독자 앞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서두를 뗀 뒤 “홍 전 사장은 올 2월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중앙일보 회장직을 사퇴했으나 중앙일보가 이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1997년 대선 때 문제로 고초가 말할 수 없었다’며 “99년 홍 전 회장의 탈세혐의 구속은 선거에서 상대진영을 도왔다는 괘씸죄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때 홍 전 회장이 공개사과와 반성을 했고 감옥에도 갔다”며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듯 대가는 이미 치렀다”고 써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는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중앙일보에 대해서만 문제삼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중앙일보를 의도적으로 매도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에 대해 결연히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앙일보는 1면 톱으로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라는 제목 하에 전날 SBS 뉴스에 나온 당시 미림팀장 공모씨의 말을 인용, “조선.동아일보는 물론 SBS MBC KBS도 다르지 않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기사화했다.
이 신문은 3면에는 공씨의 말 “조선.동아 지금 제정신 아니야… 역겨워”를 파격적인 통단 제목으로, “한쪽(중앙일보) 초상 났다고 좋아서 그러지 마라. 다 자유로울 수 없다”를 부제(副題)로 해 지면 전체를 같은 성격의 기사로 채웠다.
이 면 인터뷰에서 공씨는 “언론에 재갈 다 물려 놓을거야.” “똥물이 어디로 튈지 몰라. 자기들(조선.동아)은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정말 역겨워.” “언제 너희들(조선.동아 등)이 발칵 뒤집어질 날이 있을지 모른다”고 좌충우돌 독설을 내뱉었다.
이 신문은 4면에서도 톱으로 한나라당의 논평을 인용, “왜 특정 기업, 언론사 것만 나도나” “표적 공개 의혹 떨칠 수 없어” 등의 주(主).부제로 역시 같은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1면 사설 말미에 “잘못된 관행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진상파악에 주력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날 지면 구성은 대부분 ‘진상규명’이나 ‘사과’의 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림대 최영재(언론정보학) 교수는 “홍 전 회장이 DJ정권 때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했던 ‘언론의 독립성’ 운운이 얼마나 파렴치한 얘기였는지를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며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전략적으로 현 상황을 넘어가려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파성에 볼모가 돼버린 일부언론의 실체를 국민들이 알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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