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서 홍석현 주미대사 퇴진론이 거세지고 있다. 의원들이 개인 차원에서 자진사퇴를 촉구하던 수준에서 25일을 기점으로 당 지도부가 반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으로 압박기류가 급상승하고 있다.
주요 당직자들은 이날 사전에 입을 맞춘 듯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홍 대사의 거취를 거론하며 압박했다.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조사ㆍ후 조치’로 가닥을 잡아가는 청와대의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행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X파일 공개이후 민심흐름이 심상찮은 만큼 홍 대사를 자진 사퇴시키는 전방위 공세를 통해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홍 대사라는 뜨거운 감자만 정리하면 X파일을 걸어 무차별적으로 한나라당을 공략할 수 있으리란 정치적 계산도 엿보인다.
이날 열린우리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 대사가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이상 자진사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데 모아졌다. “X파일이 사실이라면”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문희상 의장부터 상임중앙위원회에서 홍 대사의 도덕성을 거론하며 치고 나왔다.
홍 대사의 업무능력과 무관하게 이미 중앙일보 회장 시절에 증여세 18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 등 문제가 적지않아 무작정 홍 대사를 감쌀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일부의원들은 주미대사 임명이후에도 부도산 구입을 위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는 등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은 점까지 뒤늦게 거론하며 “참여정부의 코드와도 맞지않았던 처음부터 잘못된 인사”라고 주장할 정도다. 홍 대사 처리를 미적거릴 경우 참여정부의 도덕성 전체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없지않다.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당의 공식 입장은 “진실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의원들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사퇴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당이 나서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권을 문제 삼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당의 강공 선회는 청와대와의 사전교감 흔적이 짙다. 한 상임중앙위원은 “홍 대사를 임명할 당시 자질론을 앞세워 도덕성 시비를 일축했던 청와대가 하루 아침에 태도를 바꾸기가 그렇지 않느냐“며 운을 띄웠다.
향후 노 대통령의 인사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도 홍 대사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여당의 목소리가 더 거세질 것임을 알 수 있다. 청와대가 이날 오전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정무관계 수석비서관 회의를 개최하고도 공식적으로는 “홍 대사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당청간의 역할분담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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