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 중 하나인 ‘대선자금 지원 논의 테이프’는 전 안기부 직원에 의해 유출된 뒤 브로커로 추정되는 재미교포의 손을 거쳐 언론에 제공된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1993년 초부터 운영됐던 안기부의 특수조직인 비밀도청팀(일명 ‘미림’팀)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2월 해체됐고 이후 국정원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림팀장이던 공모씨가 해직되면서 사태가 불거졌다.
도청 공작의 핵심 역할을 했던 공씨는 이 때 도청 테이프 100~200개를 몰래 들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J 정권으로 바뀐 뒤 쫓겨나면서 당한 게 서러워 (도청테이프를) 들고 나왔다가 전부 반환했다”고 말했다.
공씨 손에 있던 테이프들이 국정원에 반환(또는 압수)되기 전 공씨는 갖고 있던 테이프 중 일부를 한 재미교포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대선자금 테이프도 이 중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씨는 국정원 해직자들의 모임인 ‘국사모’(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면서도 “내가 갖고 있는 게 있다”는 말을 종종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미교포는 테이프를 건네받은 이후 삼성측과 접촉해 6억원을 요구했으나 삼성측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미교포가 공씨와 삼성측을 잇는 브로커 역할을 했는지, 독자적으로 거래를 시도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공씨는 삼성측과의 거래 시도를 부인하고 있다.
돈 요구를 거절한 삼성은 국정원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국정원은 공씨가 갖고 있던 테이프들을 수거했다. 그러나 테이프 수거가 완벽하지 않았던 탓인지 재미교포는 문제의 테이프를 계속 갖고 있었고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MBC 이상호 기자에게 이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