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ㆍ후배 법관들로부터 ‘가장 판사다운 판사’로 인정받던 대전고법 한기택(46ㆍ사시 23회) 부장판사가 24일 말레이시아에서 가족 10여명과 함께 휴가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한 판사는 1988년 6월 ‘2차 사법파동’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 노태우 대통령이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 전체 법관의 절반에 가까운 430여명의 서명을 이끌어 내 김 대법원장의 유임을 막았다. 당시 한 부장판사는 사법시험 동기인 김종훈 변호사,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과 함께 진보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 법 연구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사고는 홀로 계신 노모의 제안으로 첫 가족나들이를 갔다 당한 것이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고법의 후배 판사는 “모든 걸 다 바쳐 오로지 재판에만 열중한 탓에 후배들 사이에서 ‘목숨 걸고 재판하시는 분’으로 통했다. 훌륭한 법관을 떠나 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종훈 변호사는 “동료가, 선배가, 후배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그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한마디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며 “내가 현 시대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 판사는 ‘결혼축의금에 대한 증여세 부과는 정당’, ‘공직자 가족의 재산고지 거부사유를 공개’, ‘중국인 배우자 자녀의 입국봉쇄는 평등권에 위배’ 등의 명판결을 남겼다.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나를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이 사법부가 살 길입니다.” 올 2월 우리법 연구회 게시판에 후배 법관들에게 남긴 말이다. 유족은 부인과 1남 2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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