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학과를 졸업하고 회화 작업을 해 오던 정소연(38) 작가는 15년전 미술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비싼 장난감’으로 통하던 전문가용 캠코더를 구입하면서 영상 설치를 시작하게 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가는 곳에서는 무조건 비디오 테이프가 돌아간다. 민감하게 반응하던 주변인도 이제는 무의식 상태에서 카메라에 찍히고 만다.
서울 창전동 홍대앞에 있는 쌈지 스페이스에서 26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 ‘진짜 더 잼 있는 전시’도 그 같은 전략을 구사한다. 그와 13살 된 아들 헌종이의 일상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 작업이다. 뉴욕에서 ?기는 듯 한 모자의 일상을 관객이 유리창을 통해 ‘남의 가정사’를 엿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3층 메인 갤러리에 놓여질 ‘물류 창고’다. “설치 작업은 간단히 걸어 놓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 가닭에 판매가 거의 안 돼요. 그러다 보니 전시가 끝나고 나면 팔리기는 커녕, 오히려 돈을 줘 가면서 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있어요. 비싼 재료를 써서 열정을 다 해 몇 달 동안 만든 것들인데, 정말 눈물 나는 현실이죠.”
공간은 제한돼 있고 작업은 꾸준히 하다 보니 정리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정 작가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분해할 수 있을 때까지 분해해 박스에 넣어두는 것. 그리고 완성된 작품사진과 함께 하나 하나 이름표를 붙여 보관해 뒀다. 그렇게 쌓인 박스가 벌써 1,000개를 넘어섰다. 그는 레고 블록처럼 된 파편들을 쌓아 이번에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곧 지난 10년간의 작품 세계에 대한 회고다.
작품 옆에는 이상하게 생긴 자판기가 있다. 투명한 아크릴 속에는 정 작가가 지난 1997년~2003년 작업한 작품을 수록한 CD가 팔린다. 1만원을 넣으면 어릴 적 문방구 옆에 있는 뽑기 기계에서 나오는 공처럼 ‘도로록’ 소리를 내며 CD가 담긴 케이스가 떨어진다. 전시회 제목이 절로 생각난다.
“치열한 작업, 고통이 담긴 7년간의 결과물을 너무나 쉽고, 장난스럽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이에요. 항상 재미 있는 전시를 하려고 하지만 그 안에 철학이 꼭 담겨 있답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CD를 구입한 관객에게 감사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감상실은 이 전시회의 별미다. 성인 전용관에서는 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하고, 그 옆에 마련된 예술 치료관에서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도록 돼 있다. 음성을 감지해 컴퓨터에 미리 저장된 이미지 데이터를 투사하는 미디어 설치 작품도 흥미롭다. 관객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리를 지르냐에 따라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02)3142-1693.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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