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미국 메인주에서 한국계인 한 교수의 꾐에 끌려 종일 비가 쏟아지는 바닷가를 헤맨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캐나다에 인접한 해안에 ‘코리아’라는 지명을 가진 마을이 있는데, 틀림없이 한국과 관련이 있을 것이니 취재해보라”는 것이었다. 미국 동북부 끝에 위치한 메인주는 남한 크기의 땅에 인구가 100만 명 남짓밖에 살지 않는 곳이다.
그야말로 산과 숲과 바위투성이 해안뿐인 무인지경이라, 이곳에 코리아라는 지명이 있다면 틀림없이 유별난 내력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몇 시간동안 자동차를 몰아 겨우 찾아간 마을은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몰려 있는 작은 어촌이었다. 주민들은 모두 백인이며 통발 그물로 닭게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노인들의 입에서 나온 코리아 마을의 유래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세계 古지도의 'COREA'
스코틀랜드계 이민자들은 메인주 해안을 따라 정착하면서 마을 이름을 그냥 포구를 뜻하는 '하버(harbor)'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하버라는 마을이 너무 많이 생겨 혼란스럽게 되었다. 우편 배달에 불편을 느낀 우체국이 주도해서 마을마다 이름을 붙였다. 코리아란 마을 이름은 어느 집배원의 머리에서 나왔을 게 틀림없다고 노인들이 말했다.
싱겁기 그지없는 취재담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그 마을 이름이 영어로 ‘KOREA’가 아니라 ‘COREA’이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강남의 코엑스 전시장에서는 한국일보와 경희대학교 공동으로 광복 60주년 기념 고지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경희대는 재일교포 3세인 김혜정씨가 30년 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수집한 고지도 900여 점을 기증 받아 올해 용인캠퍼스 본관에 혜정박물관을 개관했다. 고지도 소장규모에서 세계적 수준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 관람자는 이 박물관이 소장한 17세기 이후 서양서 제작된 우리나라 주변 고지도 60여 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옛 지도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과거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주변의 역동적 정세를 관찰했던 시각과 더불어 한 국가의 영고성쇠를 느낄 수 있다.
이들 고지도에서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것은 몇 세기에 걸친 제작 시차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한반도가 ‘Corea’로, 동해가 ‘Sea of Corea’라고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 대한민국 COREA’ 라는 전시회 명칭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얘기로는 Korea 표기는 19세기 들어 영국 및 독일에서 제작된 지도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대종은 역시 Corea였다. 한국의 영문명이 Korea로 바뀐 것은 한일합병 이후이며 일본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국제기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국제관계가 왕성하던 20세기를 지나며 고착되고 말았다.
이 전시회 관람을 통해 Corea란 영문 명칭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회 일각에서 Corea로 영문명을 고치자는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의미 있고 설득력도 있다.
Corea 의 정통성은 고지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최초의 외교문서는 대한제국과 미국의 수교문서인 조미수호통상조약인데, 여기서 이 영문명이 공식으로 쓰였다.
-북한에서도 상당한 관심
실용면에서도 Corea가 좋다고 한다. 우선 디자인 분야에서 그렇다. C의 모양은 긍정적이고 전진적인 반면 K는 딱딱하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디자인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적은 실리는 아니다. 또한 국가명이 영어 알파벳 순서에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나쁠 이유는 거의 없다.
2002년 서울 월드컵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 Corea를 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국민의 정서와 감각에 부합할 소지도 충분하다. 남북 민간 교류차원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북한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만약 국민정서에 맞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영문 국명을 세계에 통용시킬 수 있다.
서울의 중국어 이름도 바꾸고 있지 않는가. 21세기 통일시대를 염두에 둘 때, 통일 한국의 영문명으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과거에 쓰였기 때문에 Corea를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니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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