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다. 산과 바다로 떠나고 싶다. 하지만 못 떠나는 이들이 있다. 장애인이다. 전국 피서지 어느 곳도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휠체어장애인 황승철(49ㆍ지체장애1급)씨가 평생 처음 홀로 피서를 떠났다. 한강시민공원 뚝섬 야외수영장. ‘공공 시설이라 조금 낫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기대와 함께. 기자가 그를 동행했다.
폭염은 숨통을 바짝 조였다. 서울은 섭씨 32도. 답답한 반지하방은 그대로 찜통. 장애인단체가 마련한 여름휴가캠프 외엔 황씨에게 피서는 꿈에서나 그리던 호사다. “수영장에 몸이라도 담그고 있으면 시원할 것 같아서요.”
출발부터 첩첩산중이다. 친구의 차에 타고 뚝섬 야외수영장 주변을 몇 차례나 돌고 나서야 장애인전용 주차장 표시가 나타났다. 주차 간격이 좁아 황씨는 차 밖으로 나오는 데 애를 먹었다.
서울시가 2003년 펴낸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매뉴얼엔 ‘주차장 입구엔 높이 150㎝~180㎝의 안내표시판을 세우고 주차공간 좌우 중 한편에 통행로 120㎝를 만들어 구별표시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겨우 차에서 내렸으나 볼라드(돌기둥)가 다시 휠체어를 막아섰다. 차의 무단진입을 막기 위한 설비지만 장애인에겐 통행을 방해하는 장벽이다. 황씨를 따라 나선 조남영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팀장은 “볼라드가 시각장애인은 걸려 넘어지고 휠체어장애인은 돌아가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뙤약볕 아래 되돌아 도착한 매표소도 황씨를 반기지 않았다. 줄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철제물 폭은 고작 60㎝. 폭이 73㎝인 황씨의 휠체어는 매표소 창구에 다가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창구 옆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티켓을 샀다.
몸이 불편한 터라 유사시를 대비하는 황씨의 습관대로 수영장에 들어서자 곧바로 화장실부터 찾았다. 하지만 화장실 3곳 모두 계단 턱이 높고 내부가 좁아 들어갈 수 없었다.
안전요원이 미안하다는 듯이 수영장 너머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장애인 전용화장실을 가리켰다. 말만 장애인전용 화장실이었다. 물도 나오지 않고 리프트도 작동되지 않았다. 공원 안내인은 “이상하다. 오늘따라 안 된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고역 끝에 수영장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황씨는 혼자 힘으로 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수영장 테두리에 너비 1m의 콘크리트 바닥이 깔려 있었기 때문. 그는 “휠체어에서 내려 풀까지 손으로 몸을 끌어 이동해야 하는데 이런 바닥이면 맨 살이 다 벗겨지지 않겠느냐”고 씁쓸하게 웃었다.
황씨는 물에 몸을 담그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피서는커녕 피로만 잔뜩 몰려왔다. 그가 말했다. “왜 장애인 시설이 필요한지 아세요? 장애인에게 편한 건 비장애인에게도 편하기 때문이죠.” 물놀이 생각에 잔뜩 들떴던 황씨는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비장애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휠체어를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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