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도청 테이프 보도와 관련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한 것을 계기로, 사회적 공익과 개인의 인격권 보호의 충돌 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홍석현 주미대사 등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도청 테이프가) 보도될 경우 심각한 인격권 침해가 이뤄질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형법 310조는 명예훼손죄 적용에 대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내용일 때’는 처벌하지 않는 면책규정을 두고 있다.
소송 남발로 인한 언론의 비판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한 것이다. 도청 테이프 관련 보도가 ‘진실한 사실’이냐는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이번 사안이 정ㆍ경ㆍ언 유착에 관한 것이고 관련 인물들 모두 ‘공인’인 만큼 ‘공익’ 요건은 갖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 달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걸려 있어 문제가 더 복잡하다. 이 법은 어떤 이유로도 불법 도청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법원의 결정도 일부 인용의 근거로 “테이프 자체의 불법성”을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들어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고 있지만, 오히려 보도의 길을 열어준 전향적 결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테이프의 원음과 대화 내용 직접 인용, 실명 거론만을 금지했을 뿐, 보도 자체를 막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날 시간 제약 등으로 인해 두루뭉술한 보도에 그쳤던 MBC도 22일 ‘뉴스데스크’에서는 비록 테이프 육성을 공개하지는 못했으나, 테이프에 담긴 대화 내용을 관련자 인터뷰 등을 곁들여 상세히 보도했다. 물론 삼성측은 보도 내용을 검토해 명예훼손 소송 등을 낼 방침이어서, 보도의 진실성과 공익성 충족 여부, 나아가 공익이 우선이냐, 인격권 보호가 우선이냐는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언론 보도 관련 가처분 신청에 대한 찬반 논란도 일고 있다. 송용회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보도와 관련한 가처분을 ‘사전검열’로 보고 인정하지 않는 대신, 언론이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힌 경우 법적 책임을 철저히 묻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헌법재판소는 가처분이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렇더라도 가처분 신청 남용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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